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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톡톡] 파출소는 취객과 전쟁 중

송고시간2017-10-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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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날'에 경찰관들과 지샌 밤

클럽 취객 보호조치 중
클럽 취객 보호조치 중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술 취한 사람들 때문에 경찰 본연의 업무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태원파출소 권철희 경장의 말입니다.

경찰의 날인 21일 새벽 이태원파출소는 소란입니다.

외국인 손님과 실랑이를 한 술집 여주인은 바닥에 신발을 던진 채 울음입니다. 손님보다 더 취한 듯합니다.

폭행으로 온 남녀 사이로 신용카드를 분실했다며 한 남성이 들어옵니다. 분실신고자가 나가자마자 양복 상의를 뒤집어 입은 남성이 비틀거리며 들어옵니다. 휴대폰을 분실했다고 말하는데 횡설수설입니다.

클럽 입구에서 행패를 부린 몽골 여성은 계속 소리를 지릅니다. 의자에 채워진 수갑이 덜컹덜컹 수리를 냅니다.

"대한민국 만세! 야 이 XXX야! 나 유학생이야! 국민차별 있어? 내가 갈 때까지 시끄러울 거야"

동틀 무렵 파출소를 세 번이나 방문해 카드분실을 호소하는 젊은이는 차라리 귀엽습니다. 세 번째 온 거라고 말을 해주니 되묻습니다.

"제가 처음에 왔을 때 차림이 어땠나요?"

무전으로 상황 확인 중
무전으로 상황 확인 중

클럽에서 영업방해로 연행된 30대 남성은 술이 깨려면 한참 걸릴듯합니다. 위협의 말은 계속됩니다.

"나중에 경찰서를 죽여버릴 거야. 내가 너희 다 죽일 거야."

침을 뱉으며 마무리합니다.

강제추행 혐의로 온 남성은 꽤 당당합니다. 동료들은 파출소 밖에서 히죽거리며 안을 들여다봅니다.

경찰관들은 주취자 보호조치가 가장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경찰의 처우도, 시민의식도 예전보다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취객은 여전합니다.

대뜸 파출소에 들어와 "경찰이 인권 몰라? 택시 잡아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태원파출소장인 신상호 경감은 이렇게 말합니다.

"직원들 고생하는 게 안쓰럽지요. 우리는 술 취한 사람들과 전쟁 중입니다."

바쁜 금요일 밤. 신 경감은 퇴근하지 않고 파출소에서 토요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택시 잡아달라는 외국인들과 실랑이 중인 시민들
택시 잡아달라는 외국인들과 실랑이 중인 시민들

"경찰도 세금을 내는 사람입니다."

21년 차 염성철 경위가 한숨처럼 내뱉습니다.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경찰이 먹고산다며, 경찰을 무시하고 하급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5년 차 구제진 경위가 '세금'에 관한 말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간혹 '세금'을 들먹이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도 세금을 내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구 경위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면 '네, 어르신'하고 말겠지만, 어린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하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제복을 입은 공무원인 까닭에 맘껏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폭행사건 처리 중인 경찰
폭행사건 처리 중인 경찰

경찰 3개월 차인 박진규 순경은 택시비 안 낸다고 버티던 중년 남성에게 혼이 납니다.

"야 이 XXXX야! 내가 너만 한 아들이 있어. 이 자식이 어디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별말 안 한 박 순경입니다.

파출소는 4개 팀이 2교대로 근무합니다. 근무시간은 08시부터 20시, 20시부터 08시까지입니다.

1팀은 15명 내외. 순찰차 3대입니다. 경찰에겐 무전기가 생명입니다. 스마트폰과 근무자 PDA도 필수입니다. 지직지직하며 오는 무전 소리를 경찰은 잘도 듣습니다. 약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파출소 바닥에 던져진 신발
파출소 바닥에 던져진 신발

이날 야근조는 62건의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이지만 대부분의 신고는 자정 이후입니다.

신고는 쏟아지고 쉴 틈은 없습니다. 강제추행, 폭행 등 형사사건은 조서를 작성해 신병을 용산경찰서로 인계합니다. 인계하고 돌아오다 다시 사건에 출동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술집에 출동한 경찰
술집에 출동한 경찰

누가 소리를 지른다고, 싸운다고, 건물 안에 갇혔다고, 핸드폰을 찾아달라고 신고를 합니다. 안갈 수는 없습니다. 빨리 가야 합니다. 신고자들을 어르고 달랩니다. 안되면 원칙대로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술 취해 우는 외국인
술 취해 우는 외국인

새벽 5시가 넘어가면 힘이 듭니다. 경찰관들이 하나둘 하품을 합니다. '어이구' 신음도 납니다. 밤새 있어 보니 이해가 됩니다.

이들이 밤새 처리한 건 신고된 62건만이 아닙니다. 62건은 112로 신고한 사건입니다.

"저기요. 케밥 집에 '프로블럼' 있어요!" 하며 한 외국인이 뛰어듭니다. 경찰관이 뛰어갑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태원파출소의 사건은 대부분 지근거리에서 일어납니다. 현장에서 잘 합의가 됐습니다. 파출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갈 때보다 느리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62건의 신고 건수에 포함이 되지 않습니다.

이태원 거리
이태원 거리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지난 이태원 거리축제 때는 줄지어 신고할 정도였습니다. 찾아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위치 추적은 범죄와 연관이 된 경우만 가능합니다.

카드를 분실했다고 어떻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카드사에 전화할 일입니다.

이태원이다 보니 외국인의 민원도 많습니다. 길을 물어보기도 하고 택시를 잡아달라고도 합니다. 어느 외국인들은 피부색 때문에 택시가 안 간다고 하소연합니다. 금요일 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사실은 장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채성식 경사가 파출소 앞에서 대기 중인 택시기사에게 흑석동까지 외국인 좀 태워주라고 하니 얼굴을 찡그리며 운행을 합니다. 외국인은 그제야 웃습니다.

약국으로 돌진한 택시
약국으로 돌진한 택시

술을 먹고 돈을 잃어버렸다고 막무가내로 우는 외국인도 있습니다. 누가 자기 핸드폰을 내팽개쳤다고 훌쩍댑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즐겁게 마시고, 팁을 많이 주고, 자기가 핸드폰을 던져버렸습니다. 숙소가 어딘지 등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자기 소지품을 펼쳐놓고 울기만 합니다. 술 취한 '진상'은 동서양이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이태원파출소 경찰관들
이태원파출소 경찰관들

파출소 화장실은 마치 공중화장실 같습니다. 수시로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아는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급한 사람은 급한 대로 그렇게 화장실을 찾습니다.

사건이 많아 복잡할 때는 경찰관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안전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화장실에 잠금장치는 없습니다.

새벽 5시에도 분주한 이태원파출소
새벽 5시에도 분주한 이태원파출소

이태원의 밤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경찰관들의 업무도 그렇습니다. 아침 7시가 넘어가자 청소를 하며 교대 준비를 합니다. 화장실 청소도 잊지 않습니다. 그 아침에 또 신고가 들어옵니다. 뛰어갑니다. 여럿이 싸우고 있다고 해서 경찰 여럿이 뛰어갑니다.

오늘(21일)은 경찰의 날입니다. 어제는 광화문 거리에서 기념행사도 열렸습니다. 도로를 통제하고 경찰특공대가 화려한 시범공연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경찰의 눈과 귀가 향할 곳은 청와대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며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파출소에는 귤 한 상자와 떡이 있습니다. 경찰의 날 기념품인가 봅니다. 바쁘기 전 조금씩 맛봅니다.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는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xy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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