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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송고시간2017-12-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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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연구가' 김문조 교수가 들려주는 행복론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우리 사회는 지금 수많은 난제(難題)에 직면해 있다. 다양한 갈등 요인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고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해진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사회구성원 간의 대화는 단절되고 불신은 쌓여만 간다.

물질적으로는 한층 풍요로워졌지만 행복하다는 사람은 적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지(未知)의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성큼 다가왔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

이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듣기 위해 '한국 사회학계의 석학'으로 불리는 김문조(67)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를 만나 봤다. 김 교수는 평생 이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다. 33년간 섰던 강단을 떠난 후에도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날카로운 지적을 계속하고 있다.

-- 요즘 관심을 두는 사회 이슈는 무엇인가요.

▲ 대학에서 원래 화학을 전공했어요. 사회학이 굉장히 다채롭고 현실적이라는 점에 끌려 과를 바꿨지요. 막상 공부해 보니까 어려워요. 지금도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전과할 때 현대사회의 이론에 가장 관심이 컸어요. 강단에서도, 퇴임 이후에도 현대사회의 이론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죠. 사회갈등, 사회통합, 과학기술학, 미래사회 등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요즘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어 기술변화, 미래사회에 대한 강연 요청이 많은 편입니다.

--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행복하다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 물질적 조건은 지금 당장 체험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행복은 현재적 체험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에요. 미래 전망도 큰 역할을 하죠. 우리 젊은이의 절망감이 큰 것은 무엇보다 내일이 어둡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계층의식과 상향이동 가능성에 관한 조사가 있어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중산층 의식을 가지면서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거나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간직해 왔죠. 하지만 20대는 달라요. 중산층 의식은 다른 세대에 비해 확고하지만 미래는 없다고 말하죠. 현재의 삶과 미래 전망 사이에 간극이 가장 큽니다.

더구나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보상을 확신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죽어라 공부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학력이 높아도 안정된 삶을 기약할 수 없는 거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는 서구인보다 세 배가량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우리는 서구인보다 세 배가량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 "만족의 원천 높아지니 만족하기 더 어려워져"

-- 청년의 절망감은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봐야 할까요.

▲ 얼핏 보면 신기하죠. 먹고살기 힘들 때는 기본 조건만 충족되면 만족했는데 갈수록 기준이 높아져요. 예전에는 대학 때도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점심을 먹었죠. 지금 대학생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밥값에 가까운 커피를 마십니다. 미래가 불투명할지라도 이런 생활방식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동기 이론 전문가인 프레더릭 허즈버그는 "삶의 만족 요인과 불만족 요인은 다르다"고 했어요.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이 안되면 불만족스럽지만, 불만족 요인을 충족시켜도 그것이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거죠. 만족은 불만족 요인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거예요. 지금 누리는 것은 기본적이기 때문에 만족 요인이 될 수 없는 거죠. 만족시켜 주는 원천이 자꾸자꾸 높아지니까 점점 만족하기 어려워지는 겁니다.

-- 요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할 때 부탄이 자주 언급됩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전 부탄에 갔다 오면서 페이스북에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정부의 존재 가치가 없다"는 부탄 법전의 내용을 올렸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전에는 국가발전이 화두였는데 이제는 행복이 화두가 됐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민행복시대를 강조했지요. 국가적 목표가 미시화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국민 개개인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는 거예요.

부탄의 국내총생산(GDP)은 우리나라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경제규모가 작아 국가 정책이 일사불란하게 실행될 수도 있죠. 부탄의 행복에는 국가의 경제규모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부탄은 아열대 지역이면서 고지대에 위치한 산악국가입니다. 험난한 환경에 적응하려면 아무래도 행복의 주머니가 작아집니다. 작은 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기후나 자연조건이 양호한 데다 그간의 고도성장으로 행복의 주머니가 너무 커졌어요. 채우는 데 힘이 들죠. 또 하나는 한국은 지나치게 과당경쟁 사회라는 거예요. 좁은 국토에 인구가 과밀하니까 경쟁이 치열한 거죠. 게다가 우리는 강한 서열주의 문화가 있어요. 등수를 매기고 금메달이나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죠. 따라서 공동체 정신이 날로 약화되고 각축적인 경쟁이 더해가고 있어요. 이탈리아의 사회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관계재'(Relational Property)를 이야기합니다. 인간관계가 삶의 중요한 재산이라는 거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사람이 있느냐"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끝에서 두 번째예요. 우리는 상부상조한다고 하고, 만나는 사람도 많고, 페이스북 같은 거로 네트워킹하고 있지만, 정작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 진심으로 위로해줄 사람은 별로 없다는 거예요.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재가 굉장히 취약한 상황이죠. 그 반면에 부탄은 신앙심에 기초한 관계재도 잘 유지되고 있어 우리보다 행복하다고 여겨집니다.

◇ "행복하려면 행복주머니 크게 만들지 말아야"

-- 우리가 과당경쟁하고 관계재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출세를 지향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성공 경로가 극도로 제한돼 있다는 거예요. 요즘 가수나 탤런트, 운동선수가 되려면 자질만 있어선 안 된다고 해요.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죠. 공부도 돈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사회적 복원력(Social Resilience)도 너무 취약합니다. 살다 보면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있는데 우리 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워요. 회생이 힘든 사회죠. 이런 것들이 과당경쟁을 부추기고 관계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 행복의 조건에는 무엇이 있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불행은 외부에서 오고 행복은 안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행은 굳이 해석을 요구하지 않아요. 큰 사고가 나면 "불행하다" "운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죠. 사건 자체가 고스란히 힘들게 해요. 행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같은 사건이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죠. 행복도 마음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발현될 수 있는 거예요. 동일한 조건에서 행복감이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행복하려면 행복주머니를 크게 만들지 말아야 해요. 욕심이 커지면 무리하게 되고 채우기도 어렵죠. 요즘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이건 자기강박으로 이어지는 자기착취를 조장할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공을 위해 스스로 닦달하는 것이죠. 행복의 경로도 다양화해야 해요. 대체로 공부 잘해서 명문대 가고 출세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사실상 만족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죠. 행복을 이루는 기둥이 늘어나야 해요. 행복의 경로가 하나라면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경쟁이 과열되고 달성도 어려워집니다.

고려대 안암동 캠퍼스에서 책을 읽고 있는 김 교수

고려대 안암동 캠퍼스에서 책을 읽고 있는 김 교수

-- 다양한 형태로 갈등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합니까.

▲ 갈등은 항상 있는 것이고, 또 적당한 갈등이 있는 사회가 오히려 건전하다고 생각됩니다. 사회가 날로 복잡해지니까 마찰이나 충돌이 늘어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은 불신, 불만, 불안에 의해 증폭되고 있어요. 이 '3불'은 병렬돼 있지 않고 시차가 있죠. 불신은 과거에 불공정한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어요. 불만은 현재적이죠. 어제나 오늘 겪은 것에 대해 불만스럽다는, 당장의 행복도와 직결됩니다. 마지막으로 불안은 미래에 대한 겁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특징적 현상이 바로 이 미래적 불안이에요. 우선 우리의 불안은 상당히 연속적이에요. 대학 입학 때까지는 입시와 성적, 대학에서는 취업, 직장에서는 승진과 퇴직, 퇴직 후에는 노후와 건강 등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생의 전 과정에서 불안이 지속해서 나타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안이 이어지죠. 사회적 안전망이 잘 돼 있는 사회라면 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겠죠. 불안감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가족주의예요. 부모는 자식이나 손자를 걱정하고, 자식은 부모를 걱정하죠. 서구에서는 자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는 일단 그들의 삶에서 손을 터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죠. 따라서 우리의 불안은 서구인보다 세 배 정도 더 큰 셈이에요. 이런 연속적이고 가중적인 불안감이 사회적인 갈등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갈등의 가장 직접적 원천은 사회 불평등이지요. 사람들 간의 차이가 서열화되면 그걸 차등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서열화된 차등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로 기회의 격차 때문이라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사회적 불평등이 불공정에서 비롯된다고 인식되면 갈등이 격화되고, 여기에 3불이 부가되면 갈등이 증폭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갈등을 줄여나갈 방법은 무엇인가요.

▲ 구조적인 부분에서 찾아야죠. 그런데 구조와 의식은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 다른 종의 유전적 변화에 맞대응해 일어나는 한 종의 유전적 변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서로 영향을 주죠. 구조적 불평등이나 격차는 마음의 벽을 만듭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임대아파트를 반대하는 것도 사람들에 대한 기피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의 장벽이 큰 거죠. 최고급 아파트도 열린 공간이 아니라 차단이 잘 된 주거지를 뜻할 때가 많고요. 이게 물리적인 차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마저 침범해 빗장을 만들고 멀리하게 하죠. 사회적 거리감이 커지는 거에요.

지난 많은 정권이 갈등 해결책으로 배려와 소통을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장벽은 이제 소정의 역사성을 가지게 되었어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경제적인 여건이 악화하면서 사람들을 분리하려는 습성이 커졌죠. 요즘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심정적 폐쇄성이 갈등을 격화시키는 한 축을 이루고 있어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마음의 장벽을 부술 의식개혁이 시급합니다. 단순한 배려, 소통, 대화로 풀리지 않죠. 마음속 깊이 자성하는 화해의 정신이 발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 "심성(心性)자본, 국가경쟁력 강화에 중요"

-- 행복 사회로 가기 위한 궁극적 조건으로 '품격사회'를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품격사회'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 품위는 위계적이고, 품격은 수평적입니다. 예전엔 문화라면 클래식, 고전문학 등 고상하고 지체 높은 사람만 향유하는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요즘에 문화는 고상하거나 범속한 것들을 망라한 생활양식의 총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문화의 개념이 민주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죠. 지체 높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문화가 아니라, 보통사람이 살아가는 생활방식도 당당한 문화라는 거예요. 신인상주의 화가인 조르주 피에르 쇠라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에서 보통사람도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일요일을 즐기는 향유 계층이 됐다는 것을 묘사했죠. 품격도 문화 개념의 변천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품격이란 게 고상한 게 아니고 누구나 갖추고 향유할 수 있는 거라는 거죠. 지금까지 시민에게는 시민의 권리를 찾는 것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민권(市民權)보다 시민성(市民性)을 중요시합니다. 품격국가가 되려면 품격 있는 시민이 필요하죠. 높은 교양이 아니라 상식적 교양을 지닌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분별 있고 소담한 마음가짐을 가진 시민이 존중받는 나라가 바로 품격사회입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의 종류에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상징자본 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앞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자본 중 하나가 '심성자본'(Mind Capital·心性資本)이라고 생각해요. 인성 함양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국가경쟁력 차원을 떠나서 인성 함양은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사회통합의 방안일 수도 있어요. 따라서 인성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 관심을 지녀야 합니다.

-- '융합문명론'이란 저서에서 우리는 분석의 시대에서 융합 문명의 시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 지금까지의 인류사회는 분화의 시대였습니다. 예컨대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전문의가 일반의보다 신뢰가 높았죠. 하지만 기후변화, 공해, 양극화 등 현대사회의 주요 과제들은 융·복합적 형태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해법을 찾으려면 다양한 지혜를 동원해야 하죠. 종전과 같은 분화적인 방식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어요. 지나친 세분화가 혼란을 가중하기까지 하고 있죠. 아드리아네의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세상을 총제적으로 바라보고 대응하며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거예요. 전문화가 필요 없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전문화와 탈전문화가 균형적으로 촉진되어 발전적 융합을 꾀해야 한다는 거죠.

◇ "인간중심주의 넘어선 세계관 가져야"

--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 산업의 틀이 새롭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지시하는 명령을 기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실행하느냐가 관건이었죠. 하지만 '제2 기계시대'라고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기계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지시하는 주관자(에이전트)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2040년대에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까지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 혹은 인간-기계 혼종들이 나타나는 상황을 전제해야 하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세계관이 필요합니다. 사물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를 갖춰야 하죠.

기계가 인간의 감성을 따라오려면 멀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직은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녀'(Her)를 보면 사만다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실제 여인보다 주인공을 감성적으로 훨씬 잘 이해하잖아요.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기계가 체성(體性)을 갖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봐요. 요즘 잘 팔리는 상품 중에 안마의자가 있죠. 격투기 선수 추성훈 씨와 딸 사랑이가 나와서 광고하는데 이게 정말 상징적이에요. 안마의자를 통해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암시 같아서요. 좋은 안마의자만 있으면 아파트 같은 주거 공간마저 필요 없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의자 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습각, 온각에 대화 기능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사람 행세까지 할 수 있죠. 잔소리하지 않는 파트너가 생기면 결혼제도까지 도전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을 인간 형태로 육화시키기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런 시대를 투시해야 하죠. 알파고로 끝나지 않고 베타고가 나와서 인간의 감정을 읽고, 감마고가 나와서 신체를 대신하며, 델타고까지 나와 스타급 성직자보다 훨씬 호소력 있는 설교를 할 수도 있으니,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설 자리가 날로 위축될 전망입니다. 더 폭넓은 세계관을 확보할 때 올바른 대응과 판단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살아남는 일자리는 뭘까" 하고 고민하지 말고 생각의 틀을 크게 바꿔야 합니다. 즉 일자리(Job)를 보지 말고 일거리(Task)를 봐야 해요. 요즘 보면 컴퓨터에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리포트 쓰고, 대화하고, 놀기도 하는 등 멀티태스킹을 하잖아요. 거기서 돈벌이가 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일거리를 넘어선 보다 다양한 활동들이 새로운 직종이나 상품이 될 수 있는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기계가 현재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세계를 기획해야 하는 거죠.

--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 연구와 출간은 제 삶을 지탱하는 활력소입니다. 앞으로 5~6년은 해오던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연구에 주력하려 합니다. 신기술과 사회변동, 현대사회 사상의 흐름에 관한 공부도 병행하고요. 이런 과업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현장 중심의 사회학에 도전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저는 사회가 아닌 사회학에 치우쳐 살아오지 않았나 자성할 때가 많았습니다. 형편 되는 대로 현장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싶어요. 재래시장, 일용직 근로자, 감정노동 등 구체적 현장이나 현실에 지금까지 학교나 연구실에서 배운 지식을 접목해 한층 더 사회를 위한 사회학에 진력해보고 싶습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행복을 연구하는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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