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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리 볍씨' 나온 청주가 벼농사 기원?…포럼서 찬반 공방

송고시간2018-01-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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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 박물관 '소로리 볍씨와 흥수아이' 학술포럼

소로리 볍씨. [충북대 박물관,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소로리 볍씨. [충북대 박물관,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90년대 후반 청주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시대 토층에서 출토된 볍씨는 정녕 세계 최고의 벼 유물일까.

아울러 청주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의 두루봉 동굴유적에서 나온 어린이 인골, 이른바 '흥수아이'는 구석기시대 어린아이의 뼈일까.

충북대 박물관은 이 박물관이 진행한 발굴조사의 최고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소로리 볍씨'와 '흥수아이'를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보는 학술포럼을 18일 열었다.

이번 포럼은 발굴조사 이후 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와 논쟁이 이어진 두 유물을 학술적 논의의 장으로 가져와 냉정하고 차분하게 검토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날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첫 발표자인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2009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가 수행한 볍씨의 연대 측정 결과를 소개하면서 "볍씨와 볍씨가 있었던 지층의 토탄 연대가 모두 1만2천500여 년 전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우 원장은 "소로리 볍씨의 절대 연대를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강조하면서 "이 볍씨는 야생 벼와 재배 벼의 중간적 특성을 보이고 있고, 청주에서는 1만5천 년 전 이후에 볍씨의 순화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민구 전남대 교수는 "1만2천 년 전에 한반도는 벼가 자라기 힘든 환경이었다"고 지적하면서 "벼농사가 본격화한 청동기시대가 3천500년 전에 시작됐는데, 소로리가 벼농사의 기원지라면 당시 벼의 흔적이 주변 지역에서 추가로 나오거나 후대의 벼 유물이 발견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소로리 볍씨의 연대에 대해 학계에서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하고 "소로리와 청동기시대 벼를 잇는 연결점이 극히 빈약한 상황에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식물 유체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충북대 박물관에 전시된 흥수아이 출토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충북대 박물관에 전시된 흥수아이 출토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2년 발굴돼 교과서에도 실렸던 '흥수아이' 인골은 키가 110∼120㎝ 정도로, 사망 당시 연령은 5∼6세로 추정된다. '흥수'는 인골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다.

이 인골은 좁고 긴 계란형 머리, 굽은 머리뼈, 강한 아래턱 등 형질적 특성과 출토 지층으로 인해 선사시대 인류라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1987년과 2006년, 2012년에 시행된 연대 측정에서는 모두 '측정 불가'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이상희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 교수는 흥수아이를 구석기시대 인골로 보기에도, 2011년 프랑스 연구자가 주장한 것처럼 조선시대 인골로 간주하기에도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유명하지만 연구가 미진했던 흥수아이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적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정용 충북대 박물관장은 "고고학 자료는 말이 없기 때문에 지극히 합리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번 포럼을 기점으로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면 소로리 볍씨와 흥수아이의 역사적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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