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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스토리] "초중고 10년간 운동하면서 수천대 맞았어요"

송고시간2018-01-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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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감독님은 나를 포함한 아이들을 일렬로 엎드리게 했다. 야구 방망이로 한 명씩 수십 대를 때렸다. 서른대까지 맞은 친구도 있었다. 경기에 졌다는 이유에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고작 13살. 그때부터 프로에 들어갈 때까지 구타는 늘 내 곁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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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설모(30) 씨의 기억이다. 설 씨는 "경기에서 지면 때리고, 실수했다는 이유로 때리고, 선배들이 기분 나쁘다고 해서 때렸다"며 "초중고 10년 운동하는 동안 종잡아 수천 대는 맞은 거 같다"고 말했다.

학생 운동 선수의 구타는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최근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인 심석희(한국체대)가 선수촌을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코치로부터 당한 폭행이 원인이었다. 비슷한 시기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신인 선수 안우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휘문고 3학년 시절 야구 방망이 등으로 후배들을 집단 폭행해 3년간 국가대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때려야 더 잘한다"는 인식과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성적 지상 주의는 구타를 조장한다. 그러나 각종 조사에 따르면 학생 체육 활동 중 당한 폭력은 성적에 역효과만 줄뿐더러 당사자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인식 개선과 시스템의 발전을 통해 근절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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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 주먹으로...증가하는 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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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발표에 따르면 2016년 체육 선수 폭행 사건과 관련한 신고 및 상담 건수는 186건으로 나타났다. 2011년 100건, 2012년 122건, 2013년 151건 등 매년 증가해 2016년에는 집계 후 가장 많은 건수를 기록했다. 6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성폭력 신고 건수 역시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2012년 29건에서 2014년 57건으로 2년 만에 곱절이 증가했다. 2015년에는 41건으로 다소 감소했다.

폭력의 형태로는 얼차려나 구타 등 신체적인 폭력이 가장 많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 상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물리적인 폭력을 경험한 이들은 전체의 74.3%에 달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모 대학 야구 감독 폭행 사건 영상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im5KOjz8K1w

욕설이나 폭언 등 언어폭력 역시 비슷한 비율인 73.9%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실태 조사를 통해 감독이 "너 때문에 졌잖아, 돌대가리 같은 놈", "(경기 끝나고) 그냥 걸어 나오는 XX 있으면 죽을 줄 알아"라고 다그치는 등 어린 학생들에게 큰 상처를 안기는 폭언 사례가 빈발하는 실정이었다고 밝혔다.

폭력의 가해자 10명 중 7명은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였다. 운동부 선배도 23%나 됐다.

지도자들은 훈육 차원으로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맞은 학생들 대부분은 '연습을 게을리해서'(69%)라고 답했다. 시합에 져서 맞았다는 비율도 6%나 됐다.

지난해 9월에는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A(39) 씨가 부원 20여 명을 폭행해 불구속 입건됐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학생들을 훌륭한 선수로 키우고 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훈육 차원에서 체벌한 것"이라며 "운동부 기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조치였을 뿐 폭력이라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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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피해자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었다. 폭력 행위 이후에 "참거나 모른 척한다"고 답한 비율은 41.5%로 가장 많았다. "주위 도움을 요청한다"(29.0%), "싫다고 분명히 요구한다"(29.7%) 등의 적극적인 대처보다 많은 응답이다.

◇ 구타, 성적 향상에 역효과만 나와

출처=아이클릭아트

출처=아이클릭아트

맞는다고 성적이 더 잘 나오거나 동기 부여가 되지는 않는다. 역효과만 난다.

20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팀(U-20) 출신인 최모 씨는 "학생 시절 훈련 중 당한 구타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심지어 경기 중에도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훈련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코치로부터 서른 대 이상 뺨을 맞고 기절하기까지 했다. 깨어나면 다시 축구화로 걷어차였다. 얼굴이 퉁퉁 부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최 씨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때렸다지만, 오히려 그렇게 맞고 출전하면 플레이가 훨씬 위축된다"며 "지면 또 흠씬 두들겨 맞을 텐데 당연히 소극적으로 뛸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B 씨는 "학생 시절 때려야 말을 잘 듣고, 성적도 좋아진다고 하지만 사실 효과가 있지도 않았다. 수십 대를 맞은 다음 날 열린 시합에서 졌으니까"라며 "맞는 게 두려워 야구를 그만둔 동기들도 많다"고 털어놨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구타를 당한 초등학생 중 "운동이 좋아졌다"고 답한 이는 3%에 불과했다. 반면, 운동이 싫어졌다고 답한 비율은 14%를 차지했다. 화가 나고(23%), 복수심이 생겼다(8%)고 답한 이들도 많았다.

(진천=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30일 앞둔 10일 오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G-30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훈련하고 있다. 2018.1.10

(진천=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30일 앞둔 10일 오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G-30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훈련하고 있다. 2018.1.10

구타에 대한 반발심은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심화한다. 폭력 직후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답한 고등학생은 56.4%(여자 65.0%, 남자 49.4%)에 달한다. 고등학교 체육 선수 중 절반 이상이 구타로 인해 운동과 멀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수치스럽고 모욕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도 19.4%(여자 25.6%, 남자 18.3%)로 나타났다.

반면에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이는 20.1%(여자 13.5%, 남자 21.5%)에 불과했다.

문제는 학생 시절 당한 구타는 성인이 돼서도 트라우마로 남을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2년 전 프로야구 선수단에서 방출돼 직장인으로 사는 C 씨는 "10여 년 전 학생 시절 맞은 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직장에서 나이 많은 윗사람만 보면 주눅이 들고 긴장이 된다"며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엎드려서 엉덩이를 맞는 게 신사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얼굴, 배 등에 손찌검을 수시로 당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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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운동 선수, 폭행 왜 끊이지 않나

전문가들은 학생 체육계의 구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및 주변인의 인식 개선과 시스템의 변화가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는 "현재 대부분 학교 운동부 코치진들의 월급은 학부형들이 회비를 걷어서 주는 시스템"이라며 아마추어 체육계의 구조적인 개선을 요구했다. 기 씨는 "성적이 안 나오면 코치의 위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구타를 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나 독일처럼 클럽 시스템으로 가지 않는 이상 이런 악습을 근절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학부모 중에서는 스파르타식으로 때려서라도 가르쳐 달라는 인식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성적을 위해서 체벌을 묵인하는 부모들이 여전히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구타를 인지했으나 필요한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답한 학부모는 2010년 45.5%에서 2012년 46.7%로 증가했다.

'폭력 예방교육을 받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부모는 같은 기간 28.6%에서 24.7%로 감소했다.

오일영 상명대 스포츠산업학 교수는 "지도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처럼 '내가 키우고, 내가 만들었으니 내 말대로 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구타나 얼차려로 정신 무장을 시킨다는 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라며 "선수 각각을 인격체로 생각하고 각자의 개성과 심리 상태에 따른 세심한 지도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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