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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뭍과 하나 된 남도 끝자락의 섬·섬·섬

송고시간2018-02-0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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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와 강진 잇는 '징검다리' 신지도·고금도·조약도


완도와 강진 잇는 '징검다리' 신지도·고금도·조약도

(완도=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바람끝이 매서운 날, 남도 끄트머리에 있는 섬 완도(莞島)로 향한다. 해남을 거쳐 완도대교를 넘자 거칠던 겨울은 온순한 겨울로 바뀌고, 차장 밖으로는 살가운 바람이 분다. 푸른 바다 위에 마치 구슬을 뿌린 듯 크고 작은 섬들이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을 이룬다. 바다 경치가 일품이다. 완도의 완(莞)은 '빙그레 웃을 완' 자다. 완도에선 경치에 웃고, 맛에 웃고, 인심에 한 번 더 웃는다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섬과 섬, 뭍과 섬을 잇는 연도·연륙교를 따라 완도로도, 강진으로도 길이 열렸다. 신지도·고금도·조약도는 완도와 강진의 징검다리 역할뿐만 아니라 색다른 멋을 안겨주는 매력 덩어리다.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건너면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신지도이고, 신지도에서 장보고대교를 건너면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선연히 새겨진 고금도다. 고금도에서약산연도교를 건너면 산이 깊어서 약초가 많이 나는 조약도이고, 고금대교를 건너면 미항으로 꼽히는 강진의 마량항이다. 사진은 신지도 상산에서 내려다본 장보고대교 전경. [사진/전수영 기자]

섬과 섬, 뭍과 섬을 잇는 연도·연륙교를 따라 완도로도, 강진으로도 길이 열렸다. 신지도·고금도·조약도는 완도와 강진의 징검다리 역할뿐만 아니라 색다른 멋을 안겨주는 매력 덩어리다.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건너면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신지도이고, 신지도에서 장보고대교를 건너면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선연히 새겨진 고금도다. 고금도에서약산연도교를 건너면 산이 깊어서 약초가 많이 나는 조약도이고, 고금대교를 건너면 미항으로 꼽히는 강진의 마량항이다. 사진은 신지도 상산에서 내려다본 장보고대교 전경. [사진/전수영 기자]

완도군에는 완도읍 본섬을 비롯해 고금도, 신지도, 조약도, 청산도, 노화도, 소안도, 보길도, 금당도, 평일도, 생일도 등 55개의 유인도와 210개의 무인도 등 265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다. 완도군은 북서쪽에 있는 해남반도가 차디찬 북서풍을 막아주고 난류가 흘러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완도읍 본섬은 1969년 완도대교로 해남과 연결됐고, 지난해 말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장보고대교가 개통하면서 본섬과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 등 완도의 섬 4개가 연륙·연도교로 이어졌고, 강진군 마량항을 잇는 국도 77호선 해상도로망이 완성됐다. 연륙교는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를 말하고, 연도교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다.

신지도의 명소인 명사십리(鳴沙十里)는 '모래 우는 소리가 십리에 걸쳐 들린다' 하여 '울모래등'으로도 불린다. 야영장, 텐트촌, 카라반이 소나무 숲 속에 박혀 있다.

신지도의 명소인 명사십리(鳴沙十里)는 '모래 우는 소리가 십리에 걸쳐 들린다' 하여 '울모래등'으로도 불린다. 야영장, 텐트촌, 카라반이 소나무 숲 속에 박혀 있다.

◇ 십리 가득 펼쳐진 은빛 모래밭

완도 동쪽에 있는 신지도(薪智島)는 2005년 신지대교 개통으로 뭍과 연결됐다. 완도에서 길이 840m의 신지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휴게소는 명사갯길 시발점이다. 명사갯길은 강독마을과 물하태를 지나 해안절벽과 원시림을 따라 명사십리해수욕장에 이르는 총 10㎞ 코스로 오래전 신지도 주민들이 완도로 가는 철부선을 타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던 오솔길이었다.

휴게소 주차장에서 뒤편 언덕으로 60m 정도 오르면 완도항과 주도, 완도읍과 완도타워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완도항 바로 앞에 있는 주도(천연기념물 제28호)에는 137여 종의 푸른 상록수들이 빽빽이 심어져 겨울에도 푸름이 더욱 빛을 발한다. 햇살을 머금으면 숲이 반짝거린다.

1980∼90년대 완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신지도 명사십리(鳴沙十里)는 '밝을 명'(明)이 아닌 '울 명'(鳴) 자를 쓴다. 명사(鳴沙)는 '모래가 운다'는 뜻으로 '은빛 모래밭이 파도에 쓸리면서 내는 소리가 십리에 걸쳐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안동 김씨의 계략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신지도로 유배 왔던 문신 이세보가 밤이면 이곳에서 유배의 설움과 울분을 실어 모래톱에 시를 쓰고 읊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아 '울 명' 자를 붙였다고 전해진다.

희고 가는 모래의 백사장이 활처럼 휘어진 해변의 길이는 4㎞나 되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매년 100만 명의 피서객이 찾고 있는 해변은 아직 한산하다. 폭 150m에 달하는 광활한 은빛 백사장을 혼자 걷는 호젓함이 좋다. 갯내음을 품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포근하다. 적막하다 못해 쓸쓸한 해변에서 누구나 시인이 된다. 김신용 시인은 십리길이 은빛으로 빛난다고 노래했다.

"우네,/ 천리 길 달려온 파도/ 가슴 시퍼렇게 멍들어서 우네/ 눈앞에 청산靑山 두고/ 청산에 가 닿지 못하는 세월/ 울모래등 기어서 기어서 넘으면/ 부서지고 부서진 마음/ 그 푸르름에 가슴 적실까/우네,/ 십리 가득 펼쳐진 은빛 모래밭/ 만파로 달려와 부서지는 파도들/ 가슴 시퍼렇게 멍들어 우네"

유배지인 신지도에서 삶을 마감한 이광사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서예가다. 그의 글씨는 해남의 대흥사, 강진 백련사, 구례 천은사 등에 남아 있다.

유배지인 신지도에서 삶을 마감한 이광사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서예가다. 그의 글씨는 해남의 대흥사, 강진 백련사, 구례 천은사 등에 남아 있다.

명사십리를 빠져나와 백사장 뒤로 우뚝 서 있는 상산(象山·352m)으로 향한다. 형세가 코끼리를 닮은 상산의 7부 능선쯤에 자리 잡은 청해사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다.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 옆으로 난 가파른 산길 300m를 오르면 섬에서 가장 높다는 상산의 정상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서면 섬과 섬을 잇는 장보고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방팔방으로 푸른 바다 위에 올망졸망한 섬들이 둥둥 떠 있고,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청산도도 손에 잡힐 듯하다.

명사십리가 내려다보이는 대곡리 구릉에는 신지항일기념탑과 항일기념자료관이 세워져 있다. 신지도는 일제강점기 소안도와 함께 '저항의 섬'이었고, 자료관에는 광주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장석천 선생과 지역 항일운동가 임재갑 선생의 흉상과 독립운동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왕실의 피가 섞였으나 역적으로 몰려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동국진체'라는 글씨를 남긴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삶을 마감했던 유배지에서는 허름한 농가와 100년 넘은 감나무 한 그루가 처절한 절망 속에 살았던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마당 텃밭에는 해풍을 맞고 싱그럽게 자란 봄동이 가득하다. 신지도에서 또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동고리 해수욕장. 5월이면 왜가리가 찾아와 소나무 숲에 둥지를 트는 가인리 왜가리서식지다.

어민들은 청청 바다에 대나무 지주를 박은 뒤 가늘게 쪼개 만든 대나무 발을 널어 매생이를 길러 낸다.

어민들은 청청 바다에 대나무 지주를 박은 뒤 가늘게 쪼개 만든 대나무 발을 널어 매생이를 길러 낸다.

◇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는 매생이 양식장

신지도에서 1.31㎞의 사장교인 장보고대교를 건너면 고금도(古今島)다. 지난해 말 장보고대교 개통으로 완도에서 강진, 해남까지의 육상 순환도로망이 완성됐다. 강진에서 완도까지 가는 데 1시간 40분에서 30분으로 단축됐는데 차창 너머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 풍광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고금도 남쪽 해안에 대나무 발이 켜켜이 채워져 있다. 어선 한 척이 수시로 물살을 가르며 양식장을 드나든다. 지주식 매생이 양식장은 신기하고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겨울 바다 위에 끝 간 데 없이 꽂힌 대나무 지주와 푸른 하늘은 마치 추상미술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밀물 때면 대나무 발이 가라앉고 썰물 때면 대나무 발에 파랗게 달린 매생이가 드러난다. 한겨울 바닷바람을 뚫고 채취하는 매생이는 한때 김 양식에 방해되는 잡태였다. 인근 넙도 어민들이 국을 끓여 먹어보니 별미였고, 전국 최초로 매생이 양식에 성공했다. 펄펄 끓여도 김이 나지 않은 매생잇국을 처음 먹다 보면 입천장을 데기에 십상이라 '미운 사위에게 매생잇국 준다'는 말이 있다. 대나무 지주를 꽂고, 채취하기까지의 매생이 양식은 섬사람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로 고된 노동으로 통한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 속의 매생이 양식장은 어민들의 묵묵한 삶이 응어리진 공간이기도 하다.

조약도의 가사해수욕장은 활처럼 휜 작은 해변이지만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해안을 둥글게 감싸 안고 있다.

조약도의 가사해수욕장은 활처럼 휜 작은 해변이지만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해안을 둥글게 감싸 안고 있다.

상정리 포구에서 나와 고금도 동쪽 끝으로 달리면 이순신 장군의 사당 충무사(사적 제114호)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 수군 8천 명을 거느리고 수군 본영을 설치한 곳으로, 이를 근거지로 왜병 30만 명을 무찌른 전승 유적지이기도 하다. 물도 풍부한 고금도는 농지가 많아 군량미를 해결할 수 있었고, 갯벌이 발달해 소금을 만들 수 있었다.

충무사 사당에는 이충무공이 직접 만들고 실전에 활용했다는 전진도첩(戰陣圖帖) 모사본이 전시돼 있고, 사당 왼쪽에는 숙종 39년(1713)에 건립한 관왕묘 묘비(廟碑)가 남아 있다. 충무사 앞 '소나무 사이로 달이 비춘다'는 월송대에는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아산 선영으로 모시기 전 83일간 안장했던 가묘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충무공의 넋을 기리는 충무사

충무공의 넋을 기리는 충무사

◇ 섬과 섬, 뭍과 섬 잇는 연륙·연도교

고금도에서 1999년 개통한 306m의 약산연도교를 건너면 남도 지역 섬 이름 가운데 '약'(藥) 자를 유일하게 쓰는 조약도(助藥島)다. 섬 안에서 100여 가지 천연약초가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면의 이름은 조약면이 아니라 '약산면'(藥山面)이다. 특히 강장효과가 뛰어난 삼지구엽초가 유명하고, 돌이 많은 산악지대에서 방목된 흑염소도 이 섬의 특산품이다.

조약도에 들어서면 봉우리 셋을 거느린 삼문산(三門山·397m)의 위용이 압도적이다. 삼문산 진달래공원은 봄이면 연분홍빛이 군락지 5만여 평을 물들이고, 다도해의 풍광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공원에서 10분 떨어진 전망대에 서면 금일도·생일도·혈도·갈마도·소등도 등이 수석처럼 반짝인다. 삼문산 아래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는 동백숲해변으로 이름난 가사해수욕장이 있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활처럼 휜 해안을 감싸고, 300m도 채 안 되는 해변에는 은빛 모래가 깔려 있다. 동백나무들은 일제히 꽃을 피우고 질 때면 '조약도의 최고 절경'을 연출한다.

약산연도교를 다시 건너 고금도로 나와 강진 마량항으로 간다. 도로 옆으로 1천200여 년 전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들여왔다는 유자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사질 토양에서 자란 고금도 유자는 향이 진하다. 50여 기의 고인돌이 밀집한 가교리 고인돌군과 고금대교 완공탑이 서 있는 고금휴게소를 거쳐 2007년 개통한 760m의 고금대교를 건너면 천혜의 미항으로 손꼽히는 마량항을 마주하게 된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을 83일간 안치했던 월송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을 83일간 안치했던 월송대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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