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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연정 타협, 양대 정파 여걸들의 무대였다

송고시간2018-02-0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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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년 사민당 역사상 첫 여성당수 날레스 등장 예상

'뭐가 큰 거냐' 정치 본령 질문… 대화와 타협 주도


155년 사민당 역사상 첫 여성당수 날레스 등장 예상
'뭐가 큰 거냐' 정치 본령 질문… 대화와 타협 주도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도대체 무엇이 큰 것인가"

독일 사회민주당 155년 역사의 첫 여성 당수직을 예약한 안드레아 날레스(47)가 다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과 차기 대연정 구성을 위한 예비협상 결과를 추인받으려고 지난 1월 21일 본(Bonn)에서 열린 전당대회 연설에서 이같이 물었다.

이 도발적 질문은 대연정 결사반대를 주도한 청년당원그룹 케빈 퀴네르트 대표가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으로 지내고 나면 이후 사민당이 "큰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 걸 빗댄 화법이었다.

 1월 전대 때 '대연정 본협상' 동의해달라는 날레스의 격정 연설 [AFP=연합뉴스]
1월 전대 때 '대연정 본협상' 동의해달라는 날레스의 격정 연설 [AFP=연합뉴스]

당내 좌파 그룹을 대표하면서도 진보 의제 관철이 힘겨운 대연정에 참여하는 걸 강력히 주장한 날레스 원내대표는 그러고서는 이 전대에 참석하려고 이동할 때 탔던 기내에서 한 여인과 나눈 대화를 전했다.

그 여성은 초고령사회 독일 전체 인구 중 2천만의 주요 관심사인 연금 문제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날레스는 기민·기사연합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 3기 내각에서 노동장관으로 일했고, 재임 기간 연금의 소득대체율 추락을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사민당은 날레스 주도 아래 소득대체율의 급격한 하락을 저지하는 데 주력했고, 결국 2025년까지 하한선을 48%로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대화와 타협으로 진보 의제를 관철하려는 사민당에 관심을 보이며 그 여인은 대연정 참여를 기대한다고 했다고 날레스는 예화 소개를 마무리하고선 "나는 항상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아왔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메르켈 vs. 날레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메르켈 vs. 날레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연금의 소득대체율 몇%가 결코 작은 건 아니지만, 민생의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요 진정 '큰 것'이라고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날레스는 "우리 의제를 다 관철할 수 없어서 대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더러 돌았다고 할 것이다"라며 혈기방장한 청년당원그룹의 야당론을 "어리석다"라고까지 몰아세웠다. 거칠고, 또 거친 언사였다.

짧지만 강렬한 7분간의 연설. 그러나 저잣거리의 언어에 격정적 톤을 가미한 이 연설은 마르틴 슐츠 당수의 1시간 연설보다 더 큰 박수를 이끌며 갈 곳 잃어 주저하는 대의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현지 일부 언론이 날레스의 "인생(생애) 연설"이라고 비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퀘네르트처럼 23년 전 청년당원그룹 대표로 활약한 날레스의 결정타는 또 있었다. "나는 재선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시민들의 질문(문제)다"라고 했다. 메르켈 집권 2기 사민당은 야당으로 버텼지만, 그때 정당지지율이 불과 23∼25%였다고도 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야당으로 지내면 이후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냐는 추궁이었다.

 누가 사민당의 '간판'인가 [좌 슐츠, 우 날레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누가 사민당의 '간판'인가 [좌 슐츠, 우 날레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결국, 대의원들은 예비협상안을 추인하며 본협상 개시를 결정했고, 7일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은 177쪽 대연정 계약서를 쓰고 협상을 타결했다. 차기 대연정 출범을 위해 사실상 마지막 남은 허들은 사민당 46만여 당원의 표결뿐이다. 청년당원그룹의 당원 모집 캠페인으로 신규 당원이 급증했지만, 독일 언론은 4기 내각 출범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지리한 대연정 협상 국면에서의 승자와 패자, '포스트 메르켈' 권력 지도까지 그리는 형국이다.

현지 언론은 "사민당이 지금 대연정 참여를 거부한다면, 그건 제정신이 아닌 거다"(지역매체 '쾰너슈타트안차이거')라는 표현 등을 써가면서 재무장관을 포함한 핵심 장관직 6개를 배분받은 사민당의 협상 결과를 두고선 사민당이 최대 승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정점을 찍은 메르켈 시대는 하향길로 접어들었다는 것 역시 중론이며 기민당이 얻은 건 메르켈의 '총리직'뿐이라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사민당 소속 올라프 숄츠 함부르크 시장이 재무장관을 맡아 차세대 사민당 총리 주자군의 일원임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보여줬고, 마르틴 슐츠 당수 후임으로 등장한 날레스 역시 같은 경쟁 대열에 들어선 모양새다. 날레스는 연금 문제 해결 외에 독일 역대 첫 최저임금제 도입·시행 등 뚜렷한 자신의 브랜드 정책 성과가 있을 뿐 아니라 1989년 고교졸업 때 향후 희망직업을 묻자 "가정주부 또는 연방총리"라고 대답했을 정도의 권력의지를 지녔다. 경우에 따라선 그가 사민당의 '메르켈'이 될 수도 있다는 성급한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대연정 타결' 메르켈 4연임 예약 [AFP=연합뉴스]
'대연정 타결' 메르켈 4연임 예약 [AFP=연합뉴스]

이에 비해 외교장관을 맡게 되는 슐츠 당수가 웃게 될지, 울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각료를 맡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을 어긴 것에다가, 앞서 야당을 하겠다고 했다가 대연정 참여로 선회한 이력이 겹치면서 일관성 없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형성했지만 이번 본협상에서 진보 의제 관철에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따르기 때문이다.

아울러 확실한 패자는 차기 내각에 진입하지 못한 지그마어 가브리엘 현 외교장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한때 사민당 당수였으나 정당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해 슐츠에게 자리를 내주고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총리후보(선거최고후보)도 양보해야 했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몇 개월 지나면 슐츠는 지금보다 훨씬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한편, 지역매체 뤼베커나흐리히텐은 이미 자기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기 시작한 정치인 3명의 동맹이라고 차기 대연정을 비평하고 총리직 사수가 목표였던 메르켈, 외교장관직을 예약한 슐츠, 대부처 개념으로 더 커질 내무부의 수장으로 베를린 중앙정치 무대에 진입할 호르스트 제호퍼 기사당 당수를 지목했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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