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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병·금동깃발 나온 삼척 흥전리사지는 어떤 절이었나

송고시간2018-02-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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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연구소·삼척시, 23일 학술대회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나온 청동정병. [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나온 청동정병. [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산골에 있는 흥전리사지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다.

강원문화재연구소는 2003년 지표조사와 삼층석탑 실측조사를 진행해 다양한 석조문화재와 기와 조각을 수습한 뒤 신라의 대규모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한동안 관심 밖에 있었던 흥전리사지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4년 발굴조사를 재개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조사를 통해 완벽한 형태의 통일신라시대 청동정병, 승단 조직이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는 청동인장, 신라시대에 국왕의 고문 역할을 한 승려를 지칭하는 '국통'(國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문 조각, 화려한 장식의 금동번(깃발)이 출토됐다.

삼척 흥전리사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척 흥전리사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삼척시와 함께 흥전리사지의 조사 성과와 의의를 살피는 학술대회를 23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연다.

박승현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발굴조사로 확인된 건물지와 기와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그는 21일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흥전리사지는 서원(西院)과 동원(東院)으로 구분된 대규모 산지 사찰이었다"며 "서원은 신앙 공간으로 조성됐고, 동원은 스님들의 수행과 공무, 생활을 위한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연구사는 "흥전리사지에서는 아직도 사명(寺名)을 추정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절을 국가에서 만들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흥전리사지에서 발견된 비석 조각 14점을 판독해 비석의 주인공이 명망을 얻은 선종 승려로, 진골 김씨의 아들로 태어나 10대에 출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승려가 850년대에 국왕에게 당나라로부터 대장경을 구해올 것을 건의했고, 국통의 직책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비석은 주인공이 입적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인 10세기 전반에 제작됐다고 덧붙였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흥전리사지에서 나온 금속공예품와 관련해 "청동정병과 청동인장은 통일신라 금속공예사를 다시 쓸 만한 획기적 자료"라고 평가한 뒤 흥전리사지 정병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적 형태를 띠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흥전리사지 정병에는 동체 어깨에 뚜렷한 음각선이 있는데, 이러한 장식의 첨가는 통일신라 금속공예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은 흥전리사지의 역사지리적 의미를 소개하고, 홍영호 하슬라문화재연구소장은 흥전리사지 삼층석탑을 분석한 내용을 발표한다. 김우웅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 부소장은 사지의 보존·관리 방안을 제안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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