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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총선] 반체제 오성운동, 창당 9년만에 최대정당 '돌풍'

송고시간2018-03-0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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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찬 항의집단'에서 중앙정치 한복판 접수

친환경주의에 '이탈리아 우선' 주창 31세 온건파 총리 탄생 가능성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기성 정치권의 부패를 맹비난하며, 투명성과 청렴함,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한 신생정당 오성운동이 창당 9년 만에 이탈리아 최대 정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31세의 대학 중퇴자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4일 이탈리아 총선 직후 발표된 공영방송 RAI의 출구조사 결과 29.5∼32.5%(하원 기준)를 득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높은 득표율로, 2위 정당인 중도좌파 민주당(20∼23%)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수치다.

4일 나폴리의 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뒤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AFP=연합뉴스]

4일 나폴리의 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뒤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AFP=연합뉴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연합이 33∼36%의 표를 얻은 것으로 조사돼 최다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창당 10년도 안 된 신생정당이 수십 년 역사의 기성 정당들을 제치고 최대 정당이 된 것 자체가 이탈리아 정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파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랄한 풍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69)와 컴퓨터 공학자 고(故) 잔로베르토 카살레조가 기성 정치권의 부패 척결과 투명성,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2009년 공동으로 발족시킨 변방의 시민운동이 불과 9년 만에 중앙 정치 무대의 주연으로 우뚝 선 것이다.

오성운동에서 다섯 개의 별을 뜻하는 오성(五星)은 물, 교통, 개발, 인터넷 접근성, 환경 등 정당의 5가지 주 관심사를 의미하며,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답게 선거에 나갈 모든 후보와 주요 정책을 자체 사이트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오성운동은 첫 총선 데뷔전인 2013년 총선 때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판 여론에 힘입어 애초 예상보다 10%포인트 높은 무려 25%를 득표, 집권 민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후 201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파고들며 수도 로마와 제4의 도시 토리노의 시장을 당선시켜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고, 이를 계기로 집권을 향한 꿈을 본격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 소득 도입을 공약하고, 환경을 중시하는 등 좌파적 색채를 띠고 있으나, 폐쇄적인 이민정책과 이탈리아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등 우파적 특성도 지니고 있어 기존의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 범주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대안 없이 기성 정치권을 비판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데 골몰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공약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붙여진 반체제 포퓰리스트 정당이라는 꼬리표도 좀처럼 떼지 못해 왔다.

이탈리아 총선을 앞두고 2일 로마의 포폴로 광장에서 함께 유세에 나선 베페 그릴로 전 오성운동 대표와 루이지 디 마이오 현 대표 [AFP=연합뉴스]

이탈리아 총선을 앞두고 2일 로마의 포폴로 광장에서 함께 유세에 나선 베페 그릴로 전 오성운동 대표와 루이지 디 마이오 현 대표 [AFP=연합뉴스]

오성운동은 이에 집권을 위해서는 과격한 색깔을 지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보고, 총선을 반 년 앞둔 작년 9월 그동안 당의 간판 역할을 한 그릴로가 2선으로 후퇴하고, 말쑥한 외모에 온건한 성향을 지닌 디 마이오 하원 부의장을 새로운 대표로 내세우는 승부수를 띄웠다.

사상 첫 집권을 노릴 정도로 세력이 커진 상황에서 분노와 항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그릴로가 전면에 나설 경우 표 확장성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디 마이오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공개한 국정 운영 프로그램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당의 오랜 방침을 삭제해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반(反)EU 세력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씻는 데 주력했다.

또한,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원천 배제한 당의 기존 원칙에서 선회해 총선 이후 다른 정당과 정책 연대를 통해 공동 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그동안 견지해온 오성운동의 원칙을 잇따라 완화했다.

아울러,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저소득층을 위한 월 780 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워 청년 실업에 신음하는 젊은 세대, 빈곤에 매몰된 낙후된 남부의 표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오성운동은 총선 전 공표할 수 있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기록한 지지율 28%보다 출구조사 득표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오성운동의 총선을 앞둔 선거 전략들이 효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오성운동이 향후 각 정당 간의 협상 과정에서 정부 구성을 주도할 기회를 잡게 될 경우 오성운동의 총선을 진두지휘한 디 마이오 대표는 이탈리아 헌정 사상 최연소 총리 후보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현재까지 역대 최연소 총리는 2014년 39세의 나이에 총리직에 오른 마테오 렌치 현 민주당 대표였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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