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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없이 맴돌던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과학수사로 실마리

송고시간2018-05-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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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2009년 제주에서 발생한 보육 여교사 살인 피의자가 경찰 재수사로 9년 만에 검거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도심지에서 귀가하던 여성이 실종 후 살해된 채 발견된 충격적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당시에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지만,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 덕에 결국 피의자로 경찰에 검거됐기 때문이다.

보육 여교사 A(당시 27세)씨가 실종된 것은 2009년 2월 1일 새벽이다.

A씨는 남자친구를 만난 후 오전 3시께 제주시 용담3동에서 택시를 타고 집이 있는 제주시 애월읍으로 향했다. 그러나 1시간 뒤인 오전 4시 5분께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인근에서 휴대전화가 꺼졌다.

다음날 가족들에 의해 실종 신고됐고, 일주일 뒤인 8일에는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동쪽에 있는 농로 배수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제주 도착한 보육교사 살인 피의자
제주 도착한 보육교사 살인 피의자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2009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의자 박모씨(가운데 모자 쓴 이)가 16일 오전 경북 영주에서 체포돼 이날 오후 제주공항을 통해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2018.5.16
jihopark@yna.co.kr

◇ 1천여명 유전자 대조했으나 '허탕'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A씨 집을 중심으로 시신은 서쪽으로 약 3㎞ 지점, 가방은 동쪽으로 약 14㎞ 지점, 마지막 휴대전화 신호가 파악된 곳은 북쪽으로 4㎞가량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A씨 시신과 유류품 등이 흩어져 있어 유기되는 과정에서 차량이 이용된 것으로 추정했다.

A씨가 실종됐을 당시 타고 간 택시의 기사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시신 주변에서는 담배꽁초 등도 발견돼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박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거짓 반응'을 얻었다.

범행 정황은 확실한 듯했으나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박씨는 자신이 A씨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시신 주변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유전자(DNA)를 확보해 분석·비교한 결과 박씨 것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A씨 시신에 대한 부검 결과 사망 시각이 시신 발견일인 8일 전 24시간 이내로 조사됐다. A씨 실종 당일인 1일보다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숨졌다는 의미다.

경찰은 박씨에게서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풀어줘야 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직후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거나 퇴사 또는 전직한 운수업계 종사자를 중심으로 그들이 운전했던 차량에서 발견된 모발과 자동차 시트 커버, 컵과 장갑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당시 도내 택시 5천600대를 대상으로 수사했다. 유전자 채취 및 대조작업을 한 택시기사만도 1천여명에 달했다.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아무런 직접 증거를 찾지 못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2012년 수사본부도 해체돼 장기 미제로 남고 말았다.

경찰서로 압송된 제주 보육교사 살해 피의자
경찰서로 압송된 제주 보육교사 살해 피의자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2009년 제주 보육 여교사 살인사건 피의자 박모씨가 16일 경찰에 검거돼 제주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박씨는 이날 오전 경북 영주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2018.5.16
atoz@yna.co.kr

◇ 동물 이용한 법의학 수사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돼 전국적으로 장기미제 사건 수사팀이 가동됐다.

제주경찰은 지난달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A씨의 사망 시점에 대해 동물을 이용해 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육교사 피살사건이 발생한 2009년 당시 피살자의 장기의 하나인 직장 체온은 13도이고 대기 온도는 9.2도로 조사됐다.

부검의는 당시 직장 체온이 일반적 체온(37.2도)보다 떨어졌으나 대기 온도보다는 3.8도 이상 높은 점을 토대로 사망 시각이 발견 당시인 그해 2월 8일 기준 24시간 이내로 추론했다.

사망자의 직장 체온은 숨진 지 24시간 이내에 대기 온도와 같아진다는 기존 법의학적 일반적인 이론에 따른 결론이다. 소화되지 않은 위의 음식물 등이 나온 것도 고려됐다.

그러나 사망 시점에 대한 동물실험에서 일반 가설이 뒤집혔다.

연구진은 비글 3마리와 돼지 4마리를 이용, 최대한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게 온도와 습도 등 기후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대기 온도와 습도 풍향, 풍속, 이슬점 온도를 측정하는 전문 기상관측장비와 직장 체온, 피부 온도, 배수로 온도 등을 24시간 측정했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 착용한 의류(상의 무스탕)를 실험동물에 입히기도 했다.

실종 사흘째인 2월 3일 비가 온 날을 고려해 119 소방당국의 협조를 받아 물까지 뿌렸다.

제주 실종 보육교사 유류품 발견 현장 수색
제주 실종 보육교사 유류품 발견 현장 수색

[연합뉴스 자료 사진]

실험 결과 사건과 동일하게 사후 7일째 되는 날 오후 8시 30분께에도 현장환경의 특수한 조건인 높은 습도와 낮은 온도, 배수로의 환경적 특성으로 인한 기화열로 사체에서 부패가 지연된 것으로 조사됐다.

착용한 두꺼운 옷과 배수로의 콘크리트 벽으로 인한 보온 효과로 직장 체온이 대기 온도보다 높은 현상도 나타났다.

실험은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가 주관하고 전북청 제주청 등의 전국 과학수사요원이 참여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여기에 법 과학수사를 거쳐 사망 시각이 실종 당일인 2월 1일 오전 3∼4시 5분께로 좁혀졌다.

이러한 과학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경찰은 숨진 A씨가 귀가하면서 탄 택시 운전사 박씨를 다시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망을 좁혀 결국 피의자로 검거할 수 있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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