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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 망대지 건물터서 구리거울·철제마 출토(종합)

송고시간2018-07-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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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거울·철제 유물 조합은 제사유적 양상"

남벽 일대서는 사다리꼴 집수시설·대형 철촉 확인

아차산성에서 나온 구리거울(위쪽)과 철제마. [광진구 제공]

아차산성에서 나온 구리거울(위쪽)과 철제마. [광진구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박상현 기자 = 삼국시대 산성인 서울 아차산성(사적 제234호) 망대지(望臺地) 일대에서 신라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유적 10동이 확인됐다.

이곳에서는 제사유적으로 보이는 동경(銅鏡·구리거울) 조각과 철제마,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기까지 사용한 토기와 기와 등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아차산성 최북단 망대지 일대에 대한 2차 발굴조사를 담당한 한강문화재연구원이 망대지 하단부 평탄면을 조사한 결과, 장축 15.6m 석축 위에 기단 석열과 초석을 갖춘 1호 건물터를 비롯해 총 10기의 건물터 유적을 확인했다고 서울 광진구가 11일 밝혔다.

아차산성 망대지 평탄면. [광진구 제공]

아차산성 망대지 평탄면. [광진구 제공]

특히 4호 건물터에서는 의도적으로 깨트려 버린 동경 조각이 한 점이 확인됐는데, 테두리 문양이 중국 동한(東漢·25∼220년) 시기 유물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모형 철제마, 차관(수레바퀴 축), 보습, 철촉 등 철기류도 발굴됐다.

동경과 철제유물 조합은 포천 반월산성, 화성 당성, 이천 설봉산성, 광양 마로산성 등지에서 확인된 제사유적 양상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삼국시대 산성 내부의 제사 흔적을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광진구는 설명했다.

윤성호 광진구 학예연구사는 "동경 문양이 1∼3세기 모티브를 지니는 반면, 신라는 6세기 중반 이후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며 "백제 한성도읍기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유물이 추후 유입됐거나 신라가 수백 년간 전해오던 귀중품을 제사를 위해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차산성은 신라 북한산주 치소였는데, 국가적 제사 장소인 중사의 북독(北瀆) 한산하(漢山河)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차산성에서 나온 집수시설. [광진구 제공]

아차산성에서 나온 집수시설. [광진구 제공]

한편 광진구는 한국고고환경연구소에 의뢰해 아차산성 남벽 일대 4차 발굴조사를 한 결과 남벽 12m, 북벽 6.5m, 동서벽 12m 사다리꼴 형태의 집수시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집수시설은 물을 저장하는 시설로, 작년에 발굴을 통해 존재가 드러났으나 이번 조사로 전체적인 규모가 파악됐다.

집수시설 내부에서는 목간과 공구, 건축 부재, 그릇 등 목기, 씨앗이 발굴됐다. 목간은 글씨가 일부 남아 있으나, 판독은 어려운 상태로 알려졌다.

또 집수시설이 매몰된 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배수로에서는 부여 부소산성 출토품과 비슷한 대형 철촉이 나왔다. 이 철촉은 성벽에 고정하거나 이동식 쇠뇌(連弩)에서 사용한 노촉으로 추정된다.

윤 연구사는 "신라는 통일 이후 백제, 고구려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노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전문 부대인 '노당'을 운용했다"며 "신라 북쪽 변경 사령부에 해당하는 아차산성에서 노당과 관련된 증거를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차산성 집수시설에서 나온 목기류(위쪽)와 철촉. [광진구 제공]

아차산성 집수시설에서 나온 목기류(위쪽)와 철촉. [광진구 제공]

아차산성은 475년 백제 도성이 고구려군 공격으로 함락됐을 당시 개로왕이 죽임을 당했다는 곳이자 삼국시대의 주요 격전지였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아차산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지속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pretty@yna.co.kr,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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