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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한국 경보의 역사' 박칠성 "실격이라니…은퇴할 때가 온 걸까"

송고시간2018-08-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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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지점에서 파울 3번 누적돼 실격…올림픽 4회, 세계선수권 5번 출전한 전설

힘차게 걸음 내딛는 '경보 간판' 박칠성
힘차게 걸음 내딛는 '경보 간판' 박칠성

(자카르타=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30일 오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외곽 경보코스에서 열린 남자 50km 경보 결선에서 박칠성이 힘차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2018.8.30
utzza@yna.co.kr

(자카르타=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박칠성(36·삼성전자)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제 정말 은퇴할 때가 온 걸까요."

박칠성은 아시안게임 실격 판정의 충격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박칠성은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주 경기장 옆에 마련한 경보 코스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50㎞ 경보 결선에서 세 차례 파울 판정을 받아 실격했다. 30㎞를 열심히 걸었지만, 결과를 내지 못하고 힘없이 경보 코스 밖으로 나왔다.

경기 뒤 만난 박칠성은 "초반에는 기록이 괜찮았다. 완주를 목표로 했으면 실격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순위에 욕심을 내다 이런 결과를 냈다"며 "힘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지치지 않았는데 경기를 더 치르지 못해 더 속상하다"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15년 동안 한국 경보 대표 선수로 외로운 싸움을 한 그의 표정에 회한이 서렸다.

경보 50㎞는 4시간 가까이 걷는 외로운 싸움이다.

한국에서 비인기 종목인 경보에서도 50㎞ 경보는 '더 인기 없는 종목'으로 꼽힌다.

4시간 가까이 사투를 펼치지만, 국내에서 인지도가 매우 낮은 경기. 그래도 박칠성은 걷고 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 4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5번이나 출전했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20㎞에 나섰고,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50㎞ 경보에 참가했다. 2년 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에는 2007, 2009, 2011, 2015, 2017년에 모습을 보였다.

2004년 아테네에서 박칠성은 남자 경보 20㎞를 완주한 선수 중 최하위(41위)에 그쳤다. 레이스를 마치지 못한 선수는 7명이었다.

당시 한국 경보는 지금보다 더 불모지였다.

지금은 중국, 일본이 경보 세계 정상권에 진입했지만, 당시까지는 세계 대회에 나서는 아시아 선수도 많지 않았다.

외신 기자들의 눈에는 박칠성이 신기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꼴찌'란 외신 기사가 여러 건 나왔다.

국내에서도 박칠성의 투혼을 칭찬했다.

하지만 박칠성은 '꼴찌'란 수식어를 창피해 했다. 그는 "운동선수에게 '아름다운 꼴찌'란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에서도 33위에 그친 박칠성은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50㎞로 전향했다.

20㎞보다 두 배 더 외롭고 괴롭지만, '꼴찌'란 타이틀을 벗어날 최상의 길이라고 판단했다.

힘차게 걸음 내딛는 '경보 간판' 박칠성
힘차게 걸음 내딛는 '경보 간판' 박칠성

(자카르타=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30일 오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외곽 경보코스에서 열린 남자 50km 경보 결선에서 박칠성이 힘차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2018.8.30
utzza@yna.co.kr

50㎞에 전념하면서 박칠성은 '꼴찌'에서 벗어나 세계 무대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박칠성은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에서 3시간 47분 13초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7위에 올라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당시 박칠성보다 앞선 선수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기록 삭제 처분을 받아, 박칠성의 순위는 6위로 상승했다.

박칠성 덕에 '50㎞ 경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박칠성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3시간 45분 55초로 자신의 한국 기록을 또 경신했다. 순위는 13위까지 올랐다.

박칠성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경보 50㎞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종합대회 노메달'의 아쉬움도 털어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도, 환경 문제도 잘 견뎠던 박칠성도 '실격'이 준 충격에는 힘들어했다.

박칠성은 "정말 멍하다. 향후 계획도 세울 수 없다"며 "이렇게 실격을 당하는 걸 보면 내 기량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은퇴한 시기가 된 걸까"라고 말했다.

박칠성은 15살 어린 주현명(21·한국체대)의 동메달 소식에는 "나도 기쁘다. 정말 축하한다"며 "이제 한국 50㎞ 경보는 현명이가 이끌 것이다. 20대 초반이니까, 더 많이 성장해서 나보다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잠시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다시 굳은 표정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깊이 생각해봐야겠다"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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