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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이승엽 "이제 홈런 치지 않아도 행복해요"

송고시간2018-09-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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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 성공·실패만 느꼈던 나…은퇴 후 1년 동안 더 많은 감정 느껴"

"지도자 이승엽은 훗날 이야기…언젠가는 하겠지만, 철저히 준비한 뒤에"

이승엽 이사장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승엽 이사장 "즐겁고 행복합니다"

(인천=연합뉴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이사장이 18일 인천 인천시 중구 IPA 볼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드림 야구캠프 with 신한은행' 행사 중 아이들의 배팅 훈련을 돕고 있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제공]

(인천=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아이들과 오전, 오후를 함께 보낸 이승엽(42) 야구장학회재단 이사장은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고 했다.

이승엽 이사장은 18일 인천 인천시 중구 IPA 볼파크에서 취약 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승엽 드림 야구캠프 with 신한은행' 행사를 열었다.

올해 3월 출범한 이승엽 야구장학재단이 치른 가장 큰 행사였다.

이승엽 이사장은 50여 명의 아이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함께 있었다. 티볼을 가르치고, 축구도 함께 했다.

아이들을 배웅한 뒤 만난 이승엽 이사장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쳤다.

그는 "오늘 처음 만난 아이들인데 헤어지고 나니 마음이 찡하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쉽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밝은 표정으로 뛰논 아이들을 생각하면 흐뭇한 마음도 들고, 야구 선수로 뛸 때와는 다른 성격의 성취감도 느낀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많은 분께 감사한 마음도 가득하다"고 '여러 감정'을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선수였던 이승엽 이사장은 자신을 '사회 초년생'이라고 소개했다.

유니폼을 벗은 지 1년, 이승엽 이사장은 "30년 동안 야구를 했다. 그런데 야구를 그만두고 사회에 나온 1년 동안 더 많은 종류의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모르는 게 더 많은 '사회'에 살지만, 지금 나는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고 밝게 웃었다.

이승엽 "축구도 합니다"
이승엽 "축구도 합니다"

(인천=연합뉴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이사장이 18일 인천 인천시 중구 IPA 볼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드림 야구캠프 with 신한은행' 행사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제공]

◇ "승·패, 성공·실패만 있는 게 아니었다" = 이승엽 이사장은 "돌아보면 내가 야구 선수로 뛰는 동안 느낀 감정은 크게 네 가지였다. 승리하면 기뻤고, 패하면 슬펐다. 성공의 희열과 실패의 아픔이 반복됐다"고 돌아봤다.

그를 둘러싼 건, 온통 야구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86년 야구에 입문한 뒤, 이승엽 이사장은 야구에만 집중했다.

KBO리그에서만 457홈런을 치고, 한일통산 626홈런의 금자탑을 쌓은 것도 야구에만 집중한 덕이다.

생애 처음 홈런왕에 오른 1997년부터 이승엽 이사장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살았다.

행복한 야구선수였지만, 고통도 느꼈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도, 비시즌에도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런 철저한 자기 관리 덕에 많은 팬이 이승엽 이사장을 '국민타자', '홈런왕'은 물론 '모범적인 선수'라고 부른다.

이승엽 이사장은 "야구는 정말 치열하게 했다"고 떠올렸다.

지난해 10월 3일 은퇴식을 치르기 전까지도 이승엽은 "마지막 타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야구'만 생각했다.

은퇴 뒤에도 이승엽 이사장의 언행은 늘 조심스럽다. 하지만 승패의 부담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승엽 이사장은 "나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편하다"며 "이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하고, 재단 사람들과 농담도 잘한다. 내가 유머감각은 좀 있는 편이다"라고 웃었다.

재단 출범을 준비하고, 재단 활동을 하면서 이승엽 이사장은 '야구장 밖'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는 "나와 다른 세계에 살던 분들을 만나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인생이 성공과 실패로만 갈리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니까, 매일 매일 뭔가를 새롭게 배운다"며 "내 감정도 다양해졌다. 당장 오늘(18일)만 해도 야구캠프를 치르고 나니 '참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부족한 면이 있었다는 아쉬움도,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고 했다.

환하게 웃는 이승엽 이사장
환하게 웃는 이승엽 이사장

(인천=연합뉴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이사장이 18일 인천 인천시 중구 IPA 볼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드림 야구캠프 with 신한은행' 행사 중 행사를 준비한 스태프들과 밝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제공]

◇ "사는 게 참 재밌습니다" = '선수 이승엽'의 주위에도 늘 사람이 모였다. 그러나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이승엽 이사장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조용한 곳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게 나만의 루틴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팬과 동료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조용한 곳을 찾았다.

이제는 다르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린다.

이승엽 이사장은 "(SBS) 해설을 맡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열린 자카르타에 갔다. 방송 관계자들과 한인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사하시던 한국 분들이 다가오셨다"며 "처음 뵙는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자유롭게 사진도 찍었다. 선수 때는 경기에 방해될까 봐 피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일화를 전했다. '달라진 이승엽'의 단면이다.

이승엽 이사장 주위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18일에도 김용일 전 삼성 라이온즈 장내 아나운서 등 '과거의 인연'이 야구캠프를 돕고자 기꺼이 대구에서 인천으로 왔다. 은퇴 후에 알게 된 사람들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승엽 이사장은 "지금까지 나는 인복(人福)으로 산 것 같다. 내가 더 잘해야 인복을 유지할 수 있다"며 "나는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는데 '조금 밖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정말 많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감탄하고, 나를 돌아본다. 마흔이 넘은 뒤에야 시작한 사회생활이 참 재밌다"고 했다.

이승엽과 함께하는 야구캠프
이승엽과 함께하는 야구캠프

(인천=연합뉴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이사장이 18일 인천 인천시 중구 IPA 볼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드림 야구캠프 with 신한은행'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제공]

◇ "지도자는 내가 자격을 갖춘 뒤에…언젠가는 해야죠" = 이승엽 이사장은 20일부터 나흘 동안 열리는 KPGA 코리안투어 휴온스 셀러브리티 프로암에 출전한다.

골프가 화두에 오르자 '야구 스타' 출신 특유의 '승부욕'이 드러난다. 이승엽 이사장은 "당연히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골프 실력이 부족하다"며 "은퇴 후에 좋아하는 골프를 실컷 했다. 그런데 실력이 늘지 않는다. 프로암 대회에서도 망신당하지 않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골프와 야구는 완전히 다른 종목이다. 이승엽 이사장은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연습 안 하고 골프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웃으며 "야구는 그렇지 않았다. 괴로운 시간을 다 견뎌야 야구를 잘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렇게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승엽 이사장은 "당연히 야구를 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그도 그라운드로 돌아올 계획이다. '승부의 세계'로 돌아오기 전, 그는 즐거움을 내려놓고 다시 자신에게 냉정해질 듯하다.

이승엽 이사장은 "언젠가는 나도 야구 지도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언제'가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나를 받아주는 구단과 당시의 내가 충분한 교감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당연히 지금은 아니다. 나는 선수를 가르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지도자 이승엽'이 되려면 다시 내게 냉정해져야 한다. 충분히 공부한 뒤에 그라운드로 돌아갈 생각이다. 준비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엽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승엽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인천=연합뉴스) 이승엽(가운데) 야구장학재단 이사장이 18일 인천 인천시 중구 IPA 볼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드림 야구캠프 with 신한은행' 행사가 끝난 뒤, 이영석 사무국장 등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재단 등 사회생활에 전념하려 한다. '야구와 어린이'를 재단의 키워드로 꼽은 이승엽 이사장은 "오늘 처음 연 유소년 야구캠프가 2회, 3회가 되고, 20회, 30회가 되도록 열심히 준비할 것"이라며 "사회생활도, 재단 활동도 너무 늦게 시작했다. 그런 만큼 더 열심히 재단 활동, KBO 홍보대사 등을 하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이승엽 이사장이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이영석 재단 사무국장은 "이승엽 이사장님은 최고의 직장 상사다. 직원들에게 '믿는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라'고 말씀해주신다"며 "우리 재단은 '이승엽'이라는 이사장님의 이름을 걸고 운영한다. 현역 시절 이사장님이 쌓은 신뢰 덕에 수월하게 재단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승엽 이사장은 '직장 후배'의 말에 쑥스러워하면서도 "더 좋은 얘기는 없나"라고 농담을 툭 던졌다. 그 덕에 주위의 모두가 웃었다.

'타자 이승엽'이 타석에 서면 모두가 홈런을 기대했다. 실제로 이승엽 이사장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 등 결정적인 순간에 역전 홈런을 치며 한국 야구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하지만 그 홈런이 나오기까지 이승엽 이사장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고, 고통스러운 과정도 겪어야 했다.

이승엽 이사장은 "이젠 홈런을 치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웃었다.

이승엽 이사장은 "나는 뒤늦게 사회에 뛰어든 '초년생'이다. 재단 활동도 이제 시작 단계"라고 거듭 몸을 낮췄다. 그러나 이승엽 야구장학재단은 이미 깊은 신뢰를 쌓았다. 그의 재단 활동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이승엽 이사장은 '일반 사회'에 뛰어든 지 1년여 만에 '늦깎이 신인왕'의 자격을 갖췄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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