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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日, 법리논쟁 이전에 강제징용 역사부터 성찰하라

송고시간2018-11-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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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도를 넘은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6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폭거"라는 비(非)외교적인 표현까지 사용,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고, 외신 인터뷰에서는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험구를 쏟아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8일 브리핑에서 "대법원 판결 확정 시점에 한국에 의한 국제법 위반 상태가 생긴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즉각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우 유감스럽다. 상대국과의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외무상이 앞장서서 과격한 발언을 하고 분쟁으로 확대하려는 듯한 현명하지 못한 태도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한일 청구권협정은 사법부를 포함해 당사국 전체를 구속하는 것"이라고 문제로 삼았지만, 이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과 강제징용 피해 배상청구권은 별개라고 판단한 것이다. 협정으로 해결된 청구권은 양국 간 '합법적 관계'에서 발생한 재정적 민사적 채무 관계에 따른 청구권에 한정되고, 강제징용 등 '불법적 관계'에서 발생한 배상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이 합법이 아니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에 대한 판단의 문제였다. 일본 정부가 '사법부도 한일 청구권협정에 구속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배상 요구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정한 바 있다. 기존 정부 기조와는 다른 사법적 판단이 일제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라는 헌법적 판단에 기초해 내려진 만큼 정부도 후속 외교 조치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 정부 지도자들처럼 이번 판결을 한일기본조약의 전면 부정이나 위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판결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며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낙연 총리가 7일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기본조약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조약을 인정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조약의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한 것"이라고 언급한 점을 일본 정부도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 직후 '피해자 상처 치유'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두루 고려해 신중한 기조를 취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우리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하면서 외교적 해결을 꼬이게 하고 있다. 이달 중순 열리는 아세안(ASEAN) 관련 정상회의 계기로 한일정상회담도 열리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법리논쟁에 뛰어들기 전에 '불법' 강제징용의 역사와 피해자의 아픔을 되짚어보는 성찰적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한다.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 "징용피해자 문제의 본질은 인권 문제"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다. 사법적 판단을 외교적 갈등으로 증폭시키기보다 미래지향적 자세로 이러한 국제사회의 원칙을 지키는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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