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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차례도 익숙해요" 베트남인 서나래씨의 추석나기

송고시간2018-09-2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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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 14년 차…전 부치고 튀김 튀기고, 차례상 준비도 익숙

"'명절 증후군'도 겪지만 즐거운 추석 보내는 게 과제라고 생각"

이주민센터서 명절 행사 치르는 서나래(오른쪽 두 번째)씨
이주민센터서 명절 행사 치르는 서나래(오른쪽 두 번째)씨

[서나래씨 제공]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매년 추석만 되면 시어머니댁을 찾아 전도 부치고 튀김도 튀겨요. 처음엔 형님들 옆에서 재료만 준비했는데 지금은 제가 도맡아 요리해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힘들지 않아요"

베트남 출신 서나래(36)씨는 2004년 결혼정보회사 소개로 나이가 10살 더 많은 남편과 결혼해 경남 창원에서 살고 있다.

결혼 14년 차로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베트남 이름인 부이 튀튀도 한국식으로 바꾸었다.

그는 올해도 인근 함안군에 있는 시어머니댁에서 가서 남편, 두 딸과 함께 추석 연휴를 보낼 계획이다.

베트남에도 한국 추석에 대응하는 명절인 '뗏 쭝 투'(Tet Trung Thu)가 있으나 두 나라가 떨어진 거리 만큼이나 풍습도 사뭇 다르다.

베트남 추석은 한국의 '어린이날'에 더 가깝다.

이날 베트남 부모들은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녀들과 등불놀이를 하거나 사자춤을 구경하고 달을 바라보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한국 추석 문화가 낯설고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추석만 되면 평소 잘 보지 못하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도 만드느라 분주하니까요. 제 경우만 하더라도 추석에 모이는 사람이 12명 정도 돼요. 말도 잘 안 통하고 차례·음식 걱정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서 씨는 이전 요리 등으로 힘들었던 명절을 떠올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추석 연휴 서 씨의 일과는 여느 평범한 한국 가정과 다르지 않다.

형님 두 명과 함께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한 뒤 튀김이나 전 같은 음식을 한다.

이주민센터 추석맞이 행사
이주민센터 추석맞이 행사

[서나래 씨 제공]

추석 당일엔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상을 차리고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낸다.

여기에 서 씨만 하는 '특별 연례행사'가 하나 더 추가된다.

추석을 맞아 창원지역에 있는 다문화 가정을 이주민센터로 초청해 떡국 등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다.

이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며 경남으로 넘어온 베트남 이주민 정착, 통역 등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남들보다 두 배 더 바쁜 추석을 보내는 셈이다.

"주변에 이주민들이 많아 평소 명절과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저는 양반이더라고요. 어떤 이주민은 도와줄 일손이 없어 장 보는 것부터 음식까지 모조리 혼자 하기도 해요. 애들 챙기랴, 음식 준비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죠. 그런데도 곧잘 해내는 모습을 보면 제가 불평을 할 수가 없는 거죠"

물론 그는 고향 베트남에 있는 가족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서 씨는 한국으로 건너온 뒤 14년간 추석은 물론 베트남 최대 명절인 설에도 조국에서 지낸 적이 없다.

한국에서 하는 일에 가정까지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도 힘들뿐더러 수십만원이 넘는 비행기 티켓값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4∼5년에 한 번이었는데 지금은 1년에 한 번 정도 시간을 내 두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을 방문해요. 베트남 풍광이 이국적이고 예전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유럽권 문화도 남아있어서 아이들이 언제 베트남 가냐고 졸라대서 피곤해요"

이주민센터서 근무하며 찍은 기념사진
이주민센터서 근무하며 찍은 기념사진

[서나래 씨 제공]

한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이곳 문화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도 추석이 되면 '명절 증후군'에 곧잘 시달린다.

특히 '언어 장벽'은 서 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고 견고했다.

한국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정치부터 경제, 연예인까지 수다를 떠는데 단어가 어렵고 내용도 복잡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이야 문제가 없지만, 어느 정도 지식과 배경 이해가 필요한 전문적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만 소외되는 것 같아 의기소침해진다.

여러모로 서 씨에게 한국 명절은 멀게만 느껴진다.

서 씨는 "아무리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내 나라 내 문화가 아닌 곳에 살면 쉽게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에요. 서로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는 순간이 특히 더 그렇고요. 헤어지는 순간까지 웃으며 즐겁게 명절을 보내는 게 제게 남은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더는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을 것 같아요"라며 추석을 맞은 이주여성의 마음을 표현했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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