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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공세에 무너진 성소수자 보호 '영웅' 조례

송고시간2015-11-0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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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미국 제4의 도시인 텍사스 주 휴스턴 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성 소수자 보호 '영웅' 조례가 주민 투표에서 반대 측의 무차별 '화장실' 공세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4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을 보면, 전날 미국 전역에서 열린 주민 선거 결과 휴스턴 시에서 열린 평등 조례안 찬반 투표에서 반대(61%)가 찬성(39%)을 압도했다.

이에 따라 이 평등 인권 조례안은 조만간 폐기될 전망이다.

동성애자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애니스 파커 시장은 지난해 5월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LGBT)와 같은 성 소수자를 인종, 피부색, 국적, 나이, 종교, 성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주택 계약, 고용, 공공시설 이용에서 차별할 수 없도록 하는 인권 조례안을 제정했다.

이를 열렬히 지지하는 쪽에서는 휴스턴 평등 인권 조례안(Houston's Equal Rights Ordinance)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영웅'(HERO) 법안이라고 불렀다.

소수자 인권 보호에 큰 관심을 둔 백악관과 시가 총액 세계 1위 기업 애플,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이 조례안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화장실' 공세에 무너진 성소수자 보호 '영웅' 조례 - 2

그러나 반대하는 이들은 이 조례가 여장한 남성 또는 성적 약탈자로 하여금 여자 화장실을 마음대로 드나들게 한다며 '화장실'(bathroom) 법안으로 명명했다.

성적 소수자의 차별을 막겠다는 이유로 제정된 이 조례가 여성을 보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로 맞선 것이다.

민주당 소속인 파커 시장에 대항해 그레그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와 댄 패트릭 주 부지사 등 공화당 인사들이 반대편에 가세했다. 보수 개신교 목사들도 화장실 법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휴스턴 시의회는 찬성 11, 반대 6으로 조례안을 가결했지만, 1년이 넘은 송사 끝에 텍사스 주 대법원은 지난 7월 휴스턴 시에 이 조례안을 폐지하든지, 주민 투표에 부치라고 명령했다.

휴스턴 시의회는 주 대법원의 명령에 따라 결국 주민 투표에 부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고, 이날 선거에서 압도적인 부정 여론을 확인했다.

공화당은 '텃밭'에서 보수 유권자들의 보호 심리를 자극했다.

여자로 변장한 남자들이 여성 화장실에 침입해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자유와 안전을 지지하는 휴스턴 유권자라면 반드시 '영웅' 조례안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광고에서도 여자 화장실 위에 '언제든 어떤 남자가'(Any Man Anytime)이라는 간명하면서도 상징적인 문구로 성 소수자 차별 보호 조례안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했다.

패트릭 주 부지사는 선거 승리 후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 아내와 여동생, 딸과 손녀를 지키는 것"이라면서 "옳지 않은 정치적 정당성(차별적인 언어나 행동을 지양하는 것)을 휴스턴 시민이 끝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례안 찬성파들은 투표 결과에 당혹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우려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조례안을 폐지하면 성 소수자들의 차별을 조장하는 '종교자유법안'으로 거센 역풍을 맞은 인디애나 주처럼 휴스턴의 도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또 휴스턴이 2017년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을 개최하기로 한마당에 인권을 등한시한다는 여론이 번지면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슈퍼볼의 경제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슈퍼볼을 개최하는 도시는 다른 지역에서 오는 NFL 팬 덕분에 큰 수입을 벌어들인다.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조례안 시행 3개월째를 맞이했지만, 여장 남성 또는 남성이 화장실에서 여성을 공격했다는 보고는 휴스턴 또는 다른 도시에서도 나오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실체 없는 '유령'이 유권자의 공포심을 자극해 조례안 폐지로 이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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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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