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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손찌검에 붕괴…'부천 초등생' 일가족 잔혹사(종합)

송고시간2016-01-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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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 초등생 아들·'폭력을 대물림한' 무직 아버지'딸만 아낀' 전화상담사 어머니·'또 다른 피해자' 막내딸

아들 시신 유기한 냉장고로 재연된 종이상자
아들 시신 유기한 냉장고로 재연된 종이상자

(부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의 현장검증이 열린 21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모 빌라에서 피의자 B(34)씨가 아들 시신을 유기한 냉장고로 재연된 종이 상자가 옮겨지고 있다.

(인천·부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유기 사건'의 피해자인 A(사망 당시 7세) 군은 숨지기 전날 아버지 B(34)씨로부터 2시간 동안 폭행을 당했다.

어머니 C씨(34)는 아버지를 도와 시신을 버리고 숨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21일 현장검증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은 채' 아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3년 2개월전으로 돌아갔다.

<※이 기사는 아버지가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유기 사건'을 일가족 4명과 경찰 프로파일러의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A군 부모가 경찰조사에서 진술한 내용과 경찰의 프로파일링 수사 결과를 토대로 기사화했습니다.>

# '못다 핀 꽃한송이' 초등생 아들

가장의 손찌검에 붕괴…'부천 초등생' 일가족 잔혹사(종합) - 2

집이 싫었다. 기억 속 아빠는 거실 컴퓨터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거나 끼니 삼아 소주를 마시는 모습뿐이었다. 그러다가 술에 취하면 수시로 주먹을 휘둘렀고 발길질을 해댔다.

2012년 가을이었다. "씻기 싫다"고 하자 목덜미를 잡고 욕실로 끌었다. 실신할 정도로 맞았다. 엄마가 인공호흡을 해줘 숨이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학교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2012년 3월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나는 부적응자였다. 집에서 아빠에게 맞는 스트레스를 친구에게 풀었다.

입학식을 한 지 열흘도 채 안 됐을 때였다. 같은 반 여자 아이의 얼굴을 연필로 찔렀다. 색연필로 옷에 낙서도 했다.

나는 학생폭력자치대책위원회에 넘겨졌고 엄마와 함께 나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라 가라'는 학교의 요구가 귀찮았는지 엄마 아빠는 4월 30일부터 나를 아예 학교에 못가게 했다.

90일 넘게 결석을 했고 그해 8월 말부터 '정원외관리대장'에 올랐다. 담임선생님이 엄마와는 연락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직접 만날 수 없었다. 엄마는 집에서 공부하라고 했다.

# '폭력을 대물림한' 무직 아버지

가장의 손찌검에 붕괴…'부천 초등생' 일가족 잔혹사(종합) - 3

아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데다 거짓말도 했다. 교육차원에서 손찌검을 하다가 나중에는 파리채까지 들었다.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친어머니에게 맞고 자랐다. 몸에 상처가 난 적도 있지만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22살 때인 2003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잠시 동거하다가 2005년 아들을 낳고 혼인신고를 했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애를 낳아 기르다 보니 어떻게 길러야 할지 잘 몰랐다. 대물림받은 체벌이 유일한 교육 수단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크며 '경제적 가장' 역할을 떠맡았다. 항상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었다.

결혼 후 계속 직업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2년 초까지는 PC방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틈틈이 돈을 벌었다. 이후는 전화상담사 일을 하는 아내의 월급으로 생활했다.

2012년 11월 7일이었다. 그날도 술에 취해 있었다. 밤을 새워 술을 마신 탓인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 비틀거리며 아들을 때리고 발길질을 해댄 잔상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 5시였다. 그때까지 아들은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린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들의 몸을 꼬집으니 움찔했다.

가장의 손찌검에 붕괴…'부천 초등생' 일가족 잔혹사(종합) - 2

느낌이 좋지 않아 일하고 있을 아내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아내가 30분만에 달려왔지만 도착 직전에 아들이 죽었다.

# '막내딸만 아낀' 전화상담사 어머니

가장의 손찌검에 붕괴…'부천 초등생' 일가족 잔혹사(종합) - 4

"아들이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다. 빨리 집으로 좀 와봐"

뜬금없는 남편의 전화였다. 그날 오후 5시 30분쯤 회사에는 조퇴한다고 말해 놓고 급히 집으로 뛰었다. 집으로 뛰어가는데 '혹시 잘못됐을까' 싶어 덜컹 겁이 났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은 숨을 쉬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애 데리고 친정에 가 있어라" 겁이 났지만 남편의 말에 막내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부천 집에 다시 돌아온 건 다음 날 오후 8시 30분쯤이었다. 딸만 친정에 두고 돌아왔다. 남편은 온종일 밥을 굶었는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치킨을 배달시켰고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허기를 채우자 남편은 아들 시신을 훼손해 숨기자고 했다. 겁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은 막내딸을 키워야 했다.

이후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인천으로 이사를 했고 막내 딸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올해 초 TV 뉴스에서 인천의 한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아버지와 계모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집 세탁실에서 맨발로 혼자 탈출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후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시작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4년 전 다녔던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처음에는 '아들이 실종돼 내가 신고했다'고 말했다가 '아이 삼촌이 신고했다'고 말을 바꿨다. 전화를 끊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의심스러운 대답이었다.

다음날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이달 14일이었다.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 '또 다른 피해자' 막내딸(10)

가장의 손찌검에 붕괴…'부천 초등생' 일가족 잔혹사(종합) - 5

아빠와 엄마는 나를 끔찍이 아꼈다. 엄마는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에게도 학교생활 전반에 관해 요구 사항이 많았다. 할 말이 있으면 활발하게 의견을 제기하는 편이었다. 혹여나 내가 학교를 다니는데 불편함이 있을까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오빠에게는 달랐다. 내가 없을 때나 집에서 안 볼 때 아빠는 오빠를 자주 때리는 것 같았다.

그런 오빠가 어느 날부터 사라졌다. 3년 전쯤이다. 일주일 전에는 아빠와 엄마도 내 곁에서 없어졌다. 나는 지금 홀로 남았다.

지금은 인천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살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상담사 선생님과 매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심리 치료사 선생님의 치료도 받을 거라고 했다. '트라우마'라는 어려운 말도 얼핏 들었다. 판사님이 아빠·엄마의 친권을 일시정지했다고 한다. 당분간 나를 보호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가 본 가해부모

조사해 보니 아버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성향이 나왔다. 전문용어로 '분노충동 조절장애'라고 한다. 사소한 일로 '욱' 해 지나치게 심한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하는 증상이다. 2차례 범죄행동분석을 통해 나온 진단이다.

직업이 없는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대신해 집에서 자녀 양육을 도맡았다. 반복적인 문제 행동을 보인 아들을 돌보면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의사소통 능력과 인지 사고 능력이 미흡했다. 아들이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할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범행이 발각돼 남편이 잡혀가는 '남편 상실'에 대한 '분리 불안 심리'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남편이 아들 시신을 훼손할 때 도운 것으로 분석됐다. 한 가장의 대물림된 폭력에 일가족이 무너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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