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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개방사회' 고려, 냇가에서 성인 남녀 혼욕했다

송고시간2017-08-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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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충북 제천시 봉양읍에서 8년째 운영해온 '누드 펜션'이 머잖아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

미등록 숙박업소에서 펜션 영업을 한 사실이 드러나 공중위생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 때문이다.

불법 혐의가 확인되면 나체주의 동호회 회원에게 가입비 10만 원과 연회비 24만 원을 받은 펜션 운영자는 처벌받는다.

경찰은 누드 펜션에서 옷을 벗고 활보한 고객에게 공연음란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연음란은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간에서 일반인의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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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는 숙박업소 폐쇄명령서를 보내고 건물 집기류 등을 봉인할 계획이어서 누드 펜션은 이제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9년부터 영업해온 누드 펜션은 자연주의를 표방한 아지트를 제공한다는 광고로 회원을 모집해왔다.

동호회 회원들이 주말마다 내려와 알몸으로 거닐자 인근 주민들은 미풍양속을 헤친다며 진입로를 막고 시위를 벌이는 등 크게 반발했다.

해변 등지에서 알몸으로 선탠하거나 목욕하는 나체족이 유행한 데는 1960년대 미국 히피 문화의 영향이 크다.

히피는 인간성 회복과 자연 회귀 등을 주장하며 현대 문명과 가치관 등을 반대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스포츠 경기 때 선수들이 대중 앞에서 거리낌 없이 옷을 벗었다. 올림픽 경기도 나체로 했다.

체육관을 뜻하는 영어 김나지움(Gymnasium)이 '발가벗은'이라는 김노수(Gymnos)에서 유래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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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알몸으로 운동하는 선수는 오직 남성이고, 신분은 귀족이라는 점이다.

기원전 7~4세기 운동선수를 표현한 조각품을 보면 남성은 맨몸이고 여성은 옷을 입었다.

기원전 5세기 중반 미론의 청동상 '원반 던지는 사람'이 대표 사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성이 원반을 던지려고 몸 회전을 준비하느라 팔을 뒤로 빼고 체중을 오른발에 싣는 순간 동작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그리스 누드 미술품을 남성 위주로 제작한 것은 인간이 세계 중심이고, 인간 범주에는 남성만 들어간다는 우주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 자격을 성인 남성에게만 부여하고 공공생활에서 여성을 배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여성은 외출하려면 남자 노예라도 동행해야지 그렇지 않고 혼자 다니는 것은 흉이 됐다.

올림픽에서 우승한 근육질 남자를 당당한 자세로 표현한 누드상은 귀족 결속을 다지고 민족 우월성을 선전하는 데 활용했다고 미술사학자들은 설명한다.

올림픽에는 귀족만 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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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인간 완결 체로 발전하던 도중에 멈춰버린 미숙한 존재라는 이유로 누드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신화 속 인물 등을 표현할 때는 여성이라도 예외적으로 누드상을 만들었다.

기원전 350년경 프락시텔레스가 그린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가 대표작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음부만 가린 미의 여신이 은근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는 포즈다.

그리스 누드는 세계 중심이자 완전한 인간이 남성이라는 관념에서 탄생한 성차별적 예술품인 셈이다.

기독교 영향력이 커진 6세기부터 로마에서 누드가 사라지고 미술은 종교의 시녀가 돼 영혼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그러다가 르네상스가 시작된 14세기부터 고대 그리스·로마 문예가 부활하면서 누드도 되살아난다.

17세기부터는 여성 누드도 선보인다.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염한 자태로 남성을 유혹하는 듯한 모습이 주류를 이룬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가 남긴 '수잔나와 장로들'은 관능적인 자태로 목욕하던 수잔나를 장로들이 엿보는 장면을 그렸다.

다비드와 함께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앵그르(1780~1867)는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자를 비롯해 여러 여성 누드를 그렸다.

조각이나 그림으로 벌거벗은 신체를 표현한 그리스와 달리 로마는 남녀가 목욕탕에서 알몸을 드러냈다.

대중목욕탕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짓기 시작해 말기에는 8백50여 개로 늘어났다.

카라칼라 목욕탕은 2천100명이 동시에 들어갈 만큼 넓었다. 이곳에는 욕실 외에 도서실, 점포, 체조경기장 등을 갖춘 거대한 사교 공간이었다.

로마 초기만 해도 풍기를 중시하여 남녀가 따로 낮에만 입욕했으나 말기에는 혼탕으로 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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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5세기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독일에서는 목욕탕이 남녀 사교장이나 매춘 장소로 악용됐다.

16세기에는 유럽에서 공중 목욕 문화가 사라진다.

매독과 흑사병이 대륙을 휩쓸면서 목욕탕 사용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조차 1647년부터 64년 동안 단 한 번만 목욕했다고 한다.

목욕탕이 없어지자 향수가 발달한다.

몸을 자주 씻지 못해 생기는 악취를 없애느라 다양한 향수를 개발한 것이다.

남성이 귀부인을 방문할 때도 향수 사용은 필수였다. 여자들은 온몸에 향수를 뿌린 다음에 화장품을 발랐다.

세수는 포도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는 것으로 보통 이틀에 한 번꼴로 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목욕 문화가 발달했다.

목욕은 불교 전래 이후 몸을 씻음으로써 타락한 마음마저 정화한다는 종교의식에서 비롯돼 널리 보급됐다.

신라 귀족은 대부분 자택에 목욕시설을 갖췄고, 사찰에서는 승려와 신도가 함께 쓰는 대형 목욕탕이 운영됐다.

고려 시대 욕탕에는 팥과 녹두 등을 갈아 만든 가루비누와 향유, 향수 등을 갖췄다. 목욕이 청결뿐만 아니라 미용 목적으로도 활용됐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요즘처럼 희고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아이에게 세수나 목욕을 시킬 때는 복숭아 꽃 물을 사용했다.

성인은 몸에서 향이 나게 하려고 난초 삶은 물로 목욕했다. 난초는 민감한 피부를 진정시키고 미백 효과가 뛰어났다.

고려는 역대 어떤 왕조보다 개방적이었다.

부인이나 승려도 남자처럼 절을 하고 남녀 재산은 균등하게 상속됐다.

개방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화가 남녀 혼욕이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남녀가 어울려 목욕했다는 글이‘선화봉사고려도경’등에 실려 있다.

도읍지 개성을 비롯한 큰 냇가 언덕에 의관을 벗어 놓고 벌거벗은 남녀가 어울려 몸을 씻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서양에서 요즘 유행하는 누드비치와 닮았다.

이탈리아의 리미니 비치에서 한 남성이 누드로 달리는 모습. /사진=픽사베이

이탈리아의 리미니 비치에서 한 남성이 누드로 달리는 모습. /사진=픽사베이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 목욕 문화는 확 달라진다.

남녀 접촉을 엄격히 제한한 유교 윤리 때문에 남녀 혼욕은커녕 목욕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일본 목욕탕은 매우 문란했다.

임진왜란 직후 도쿄(에도)를 수도로 삼은 에도 막부에서 남녀 혼탕이 생겨나 1850년대까지 성행한다.

혼탕에는 유나로 불리던 여성이 세신(때밀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몸까지 판다. 큰 목욕탕에 고용된 유나는 약 30명에 달했다.

욕탕 2층은 우리나라 찜질방처럼 남녀노소가 모여 앉아 도박이나 오락 등을 즐기는 공간이다.

메이지 일왕이 통치한 메이지 시대(1868~1912년)에는 남녀 혼욕이 금지된다.

개항으로 입국한 서양인들에게 혼탕이 나쁜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판단에서다.

선탠 등을 목적으로 해변이나 숲에서 알몸으로 활보하는 문화는 동서양을 통틀어 오래되지 않았다.

누드촌은 프랑스에서 1950년대에 선보인 이후 미국 히피 문화 등 영향을 받아 유럽과 미주 대륙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프랑스에만 누드비치가 100개 넘고 누드 야영장은 약 2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드비치로 인기를 끄는 명소가 종종 언론에 소개되기도 한다.

그리스 미노코스 섬에 있는 파라다이스 비치는 파티로 유명하고 미국 하와이 리틀 비치는 서핑 등으로 잘 알려졌다.

미국에는 자연주의자를 위한 누드비치가 주립 해수욕장에 생기고 민간 누드 리조트는 무수히 많다.

자연주의자들은 인체를 나무나 풀과 같은 자연의 일부로 여겨 남에게 알몸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주의자는 아닐지라도 맨몸으로 일광욕이나 찜질을 즐기는 사람도 적잖다.

이들을 위한 누드 레크리에이션 산업이 번창해 그 규모가 오래전에 4억 달러(약 4천500억 원)를 넘어섰다고 한다.

누드비치에는 출입제한 규정이 있다.

소아성애 범죄를 우려해 어린이 출입을 막고 들여보낼 때는 옷을 입도록 하는 곳이 많다.

동양에서는 개성보다 집단주의를 중시하는 전통 때문인지 누드비치가 성공하지 못했다.

중국 하이난 성에서 2004년께 중반 누드비치가 운영됐으나 약 10년 만에 폐쇄됐다.

2.3km 길이의 모래 해변에서 누구나 알몸으로 일광욕이나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항의로 문을 닫았다.

이용객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여름 성수기에도 하루 최다 인원이 500여 명에 그쳤다. 그것도 남자 일색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전남 장흥군이 2011년 질병 치유용 누드 산림욕장을 개장했으나 따가운 국민 시선 탓에 중단됐다.

강원도 연곡 등 일부 해수욕장은 누드 해변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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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운을 느끼려고 옷으로부터 신체를 해방한다는 나체 문화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크게 갈린다.

찬성론자는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알몸으로 세상에 왔듯이 옷을 벗는 행위는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인 만큼 나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의 핵심은 홀딱 벗은 몸은 성도덕을 훼손하고 수치심과 혐오감을 유발하므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체주의를 반대하는 여론이 훨씬 높다.

온라인 여행사가 해변 여행객을 조사한 바로는 한국인의 81%가 상반신 노출이나 누드비치가 불편했다고 답했다. 일본(75%)과 홍콩(73%)보다 높은 수치다.

다만, 제천 누드 펜션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도 누드 문화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음란이라는 개념도 사회 풍속이나 윤리, 종교 등의 변화상에 맞춰 바뀌는 만큼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처벌 법규는 손질해야 한다.

옷을 벗었다고 무조건 단속할 게 아니라 나체 장소나 시간,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처벌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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