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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풍력발전으로 사람도 동물도 못사는 동네 된다"

송고시간2017-12-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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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홍계리 주산 산사태 1급 위험지에 풍력단지 조성

"마을 주민 대부분 전과자 될 판…님비 취급하지 말아 달라"

풍력반대 현수막
풍력반대 현수막

(영양=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경북 영양군 석보면 길거리에 걸린 풍력발전 반대 현수막. 2017.12.10.

(영양=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사람과 자연에 이렇게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재생에너지로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홍계리는 사람도 동물도 살지 못할 정도로 변할 것이 뻔합니다."

고추와 산나물 산지로 유명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홍계리 주민 박충락(67)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주산(해발 690m) 정상에서 이뤄지는 양구리 풍력발전단지 조성 공사 때문이다. 주산은 석보면 모든 학교 교가 가사에 들어갈 만큼 주민들이 대표 산으로 여기며 아끼는 곳이라고 한다.

양구리 풍력발전단지는 영양읍 양구리와 석보면 홍계리 등 4개 마을에 걸친 주산 정상에 3.45㎿급 풍력발전기 22기(총 발전용량 75.9㎿)를 설치해 만든다. '영양에코파워'가 지난해 4월 공사를 시작했다.

1∼11호기 구간에는 이미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4∼7호기를 임시 가동 중이다. 11호기 이후 구간은 발전기를 설치할 터를 조성하고 있다.

'양구리 풍력발전단지'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홍계리 풍력발전단지'로 불러야 한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22기 가운데 9기를 홍계리에 세우고 발전시설이 들어서는 면적도 홍계리가 양구리보다 넓다.

풍력단지 건설허가는 2014년에 났지만, 홍계리 주민들은 지난해 말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다른 마을과 달리 홍계리에서만 발전업체가 주민설명회를 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발전업체가 주민 반발을 예상하고 '양구리 풍력발전단지'로 이름을 붙였다고 추측한다.

발전업체가 환경영향평가를 소규모로 받기 위해 발전시설 조성 면적을 축소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홍계리 주민들은 풍력단지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부터 공사 중단과 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주산 정상에 풍력단지를 조성하지만 산 아래 주민에게 피해가 그대로 돌아온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생활 환경 파괴를 보다 못한 주민들은 청송과 안동에서 영양으로 들어오는 길목 곳곳에 '풍력발전단지 조성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홍계리에서 바라본 주산 정상 풍력 발전 단지
홍계리에서 바라본 주산 정상 풍력 발전 단지

(영양=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홍계리 주산 정상에 풍력 발전 시설이 늘어서 있다. 2017.12.10.

또 풍력발전소가 들어설 정도로 바람이 많은 곳에서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마다않고 공사장 주변을 오르내리며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북 동북부 산골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속이 탄다고 한 주민은 말했다.

주민 5명은 최근 법원에서 보낸 소장을 받았다. 시공업체인 한화건설이 주민 방해로 공사가 늦어져 피해가 생겼다며 25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이다.

지난 3월에는 발전업체가 주민 50여명 가운데 4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풍력반대주민대책위 부위원장인 박씨는 최근 현장에서 공사 중단을 요구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홍계리 주민 평균 연령은 75살 안팎이다. 몇 안 되는 고령의 주민들이 생활 환경을 지키려다 전과자가 되거나 수억원대 민사 책임을 져야 할 위기에 처했다.

홍계리 주민들이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풍력발전시설을 반대하는 것은 홍계리 쪽이 산사태 위험 1급 지역이기 때문이다.

홍계리쪽 주산에는 10여년 전 태풍 '루사'와 '매미'가 몰아쳤을 때 무너져 내린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홍계리 산사태 흔적 [박충락씨 제공=연합뉴스]
홍계리 산사태 흔적 [박충락씨 제공=연합뉴스]

(영양=연합뉴스) 풍력 발전 단지가 들어서는 영양 석보면 홍계리에 남아 있는 산사태 흔적. 2017.12.10.

주산이 이른바 '칼산'(정상부 경사가 급한 뾰족한 산)인 탓에 공사를 하려면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물론 산 정상을 30m가량 깎아내고 옹벽까지 쌓아야 한다.

주민들은 풍력발전기 1기를 설치하는 데 1천㎡가량이 필요한 만큼 22기를 설치하려면 주산 등성이를 모두 깎아내야 할 것으로 본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지난달 초 영양군에 양구리 발전단지 현장에 공사 중단 명령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민들은 영양군이 공사 중단 명령을 한 뒤에도 보름 넘게 공사가 계속됐다고 했다.

풍력단지 공사장 주변에는 '무단으로 출입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다'는 현수막을 걸어 현장 접근을 막고 있다.

공사 현장 수십미터 아래에는 사과밭과 배추밭이 줄지어 있지만, 안전펜스 등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야생동물 방지용으로밖에 볼 수 없는 그물망만 곳곳에 쳐놓았다.

박씨는 올해 봄 공사 현장에서 50m가량 떨어진 사과밭에서 작업할 때 지름 1m가 넘는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다른 주민들도 공사가 시작된 뒤 수시로 바위가 밭으로 굴러내려 왔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주산이 생태계 보고(寶庫)이기도 해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주산 일대에 법정보호종인 수리부엉이(천연기념물 324-2호·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와 참매, 담비, 원앙 등 법정 보호동물 다수가 서식한다고 했다.

주민들은 해당 야생동물을 찍은 사진을 일일이 제시하며 이 일대가 생태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주장했지만 무시당했다고 했다.

주민 조을환(63)씨는 "절박한 홍계리 주민 주장을 님비(NIMBY)로 보면 안 된다. 풍력발전기가 세워지는 곳은 주민 생활터전과 가까울 뿐 아니라 산양과 사향노루, 담비 등 멸종위기종 보금자리다"며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 없이 발전시설이 계속 들어서 영양지역이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재앙을 맞이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환경청은 지난 10월 현지 점검에서 사면(斜面·비탈면) 관리가 부적정하고 법정보호종인 수리부엉이 발견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확인했다.

또 일부 풍력발전기 가동에 따른 저주파음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등 협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며 공사를 우선 중지하도록 명령해 줄 것을 영양군에 요청했다.

이와 함께 저주파음 모니터링을 하지 않은 발전기 가동을 중단하고 모니터링한 뒤 결과를 주민들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낙동정맥(洛東正脈) 일월산 자락으로 산세가 수려하고 주요 생태축 역할을 하는 영양에 풍력발전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기는 2009년이다. 주산과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석보면 맹동산(해발 830m)에 1.5㎿급 41기가 처음 들어섰다.

그러나 불과 7년여만인 올해 상반기 영양에서 전기를 생산 중인 시설은 3.5㎿급 18기를 포함해 59기로 늘었다.

홍계리와 양구리 일대 주산에는 1.65㎿급 25기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산림청 등이 산사태 1급 위험지역인 만큼 발전시설 규모를 줄이라고 권고했다.

발전업체는 발전시설 수를 22기로 줄이는 대신 발전용량을 3.45㎿급으로 늘였다.

영양에는 맹동산과 주산뿐 아니라 석보면 토산리 포도산 일대, 삼의리 등에도 발전업체들이 산업자원부 전기위원회 허가를 받아 풍력발전 건설을 위한 적합도 등 평가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대로라면 영양에는 풍력발전기 130기(상업운전 59기, 공사 중 27기, 행정절차 진행 중 44기)가 들어선다.

영양군에 따르면 현재 가동하는 풍력시설 59기가 생산하는 평균 전기량은 120.9㎿ 안팎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6만5천 가구가 사용할 수 있다. 경북 경산시민(약 27만명)이 쓰는 전기량과 맞먹는다.

풍력단지 조성 중인 주산 정상
풍력단지 조성 중인 주산 정상

(영양=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홍계리 주산 정상. 2017.12.10.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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