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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늘] 잊힌 '창경호'의 비극, 되풀이되는 참사

송고시간2018-01-0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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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에는 이런 일이

1952년, 참사 1년 전 창경호 모습
1952년, 참사 1년 전 창경호 모습

(서울=연합뉴스) '창경호'. 대체로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국내 해상 선박 사고 최대의 참사를 기록한 이름입니다. '세월호'만큼 비극적인 사고였습니다.

위 사진은 사고 발생 1년 전인 1952년의 창경호(147t) 모습입니다.

1953년 1월 9일 늦은 밤이었습니다. 여수항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정기여객선 창경호가 부산 서남쪽 20해리 지점 다대포 인근을 항해하던 중 갑자기 몰아닥친 강풍과 풍랑을 만나 순식간에 침몰했습니다.

그런데 사망자 수 보도가 제각각입니다. 당시 어떤 언론에서는 229명, 다른 기록에서는 330명입니다. 이는 승선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그 시대의 후진적인 집계 때문입니다. 참사 규모에 비하면 사고 전후 사진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시 한 신문의 보도
당시 한 신문의 보도

다만 살아남은 사람이 선장과 선원 3명, 중학생 2명, 군인 1명 등 모두 7명뿐이었다는 것은 일치합니다.

이후 국회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일차적으로는 천재지변이 사고원인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전형적인 탈법과 불법 탓이었습니다.

20년 이상 된 오래된 화물용 선박을 여객선으로 개조한 것으로 드러났고, 구명보트나 구명복이 제대로 비치돼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비상품들이 배 안이 아닌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사건을 특종보도하고 호외를 통해 제일 먼저 세상에 알린 부산일보는 1996년 이 사건을 돌아보면서 쓴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산일보가 보도한 현장 사진
당시 부산일보가 보도한 현장 사진

"다대포 앞 해상을 오가는 각종 선박은 창경호 사건을 기억조차 못 하는 듯 세월의 무상함을 간직한 채 여전히 출렁거리는 거센 파도를 헤치고 있다."

이 사고가 발생한 당시는 요즘처럼 언론매체가 발달하지도 못했고 감시의 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대였던 탓에 여러 진실이 묻혔을 듯합니다.

이후에도 쉬이 잊어버리는 우리의 조급증과 안전불감증 탓에 대형 해상 선박 사고는 잊어버릴 만하면 터졌습니다.

- 1963년 전남 영암 가지도 앞 '연호' 침몰로 138명 사망.

- 1967년 경남 남해 가덕도 앞 여객선 '한일호' 침몰로 94명 사망.

- 1970년 전남 여수 소리도 앞 여객선 '남영호' 침몰로 323명 사망.

- 1974년 경남 충무 해상 해군 YTL선 전복으로 157명 사망,

- 1993년 전북 부안 위도 앞 '서해훼리호' 침몰로 292명 사망.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 해상 여객선 '세월호' 침몰로 295명 사망.

세월호, 서해훼리호, 창경호(왼쪽부터)
세월호, 서해훼리호, 창경호(왼쪽부터)

지난해 12월 3일 인천 영흥도 해상 낚싯배 침몰사고로 13명이 사망한 비보 등 이보다 작은 사고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대부분이 인재(人災)로 드러났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국토는 '자랑'이어야 합니다. 바다를 지배하거나 다스리지는 못하더라도 바다를 기만하거나 경시하지는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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