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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사라진 7살 아들, 지금도 찾아 헤맨다

송고시간2018-05-1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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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이창현군 사연…5·18기념식서 공연으로 재조명

5·18 행방불명자 이창현군 [국립 5·18 민주묘지 관리사무소 제공=연합뉴스]
5·18 행방불명자 이창현군 [국립 5·18 민주묘지 관리사무소 제공=연합뉴스]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오는 18일 국립 5·18묘역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초등학교 1학년 만 7살의 나이에 5·18 당시 행방불명된 이창현군의 사연이 재조명된다.

38년간 아들 창현군의 시신이라도 찾으려 전국을 헤맨 아버지 이귀복(82)씨의 호소도 영상을 통해 함께 소개된다.

초등학생 행방불명자 아들과 그 아들을 찾으려는 애타는 아버지의 얘기가 다시 알려지면 5·18 행불자를 찾기 위한 활동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창현군은 양동초등학교 1학년이던 1980년 5월 18일 집에서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휴교령이 내려졌는데 그날 집 밖에 나간 창현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버지 이씨는 건축 공사 때문에 전남 완도에서 일하던 중 5·18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광주로 돌아왔지만 청천벽력같은 아들의 실종 소식을 접했다.

총을 들고 시내 주요 도로마다 진을 치고 있는 군인들 때문에 이씨와 가족은 한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씨는 군인들이 뜸해지자 광주 시내 병원과 변사체를 발견했다는 소문이 들리는 곳마다 모두 찾아다녔지만 끝내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으나 이씨는 아들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직장도 나가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생활고에 시달린 아내는 집을 떠났고 이씨 가족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군사 기록 등에서 창현군 또래 어린이의 총기 사망 자료가 확인되기도 했지만 끝내 시신을 찾지는 못했다.

그나마 이 기록으로 창현군은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고 시신 없이 유품만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살아있다면 1980년 당시의 아버지 나잇대가 됐겠지만 이씨의 기억 속 창현군은 38년째 초등학교 1학년 모습 그대로다.

영정 사진 역시 창현군이 아기 때 색동 한복을 입히고 찍은 모습이다.

1 묘역 10-44에 자리 잡은 창현군 묘비에는 '7세의 나이로 학교에 다닌 지 2개월, M16 총상, 공수부대, 내 아들 창현이를 아버지 가슴에 묻는다. 망월동에 고이 잠들어라'는 아버지의 한스러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씨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아들의 유골이라도 찾아 잘 묻어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5·18 관련 가족들이 당시 행방불명됐다고 광주시에 신고한 사람은 441명이다.

이중 창현군처럼 간접적으로나마 군 자료 등이 존재해 공식적으로 행불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81명에 불과하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18일 5·18 기념식에서 창현군과 아버지 이씨의 사연을 '씨네라마'(영화 택시운전사·화려한 휴가+공연) 형식으로 전달해 5·18민주화운동의 과정과 의미를 재조명할 예정이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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